산업 기업

연장근로 땐 임금 1.5배...인건비 부담에 차라리 수주·고용 포기

[주52시간 포비아에 떠는 기업]

덜컥 주문 받았다가 납기일 제대로 못 맞추면 되레 손실

사람 뽑고 싶어도 숙련공 없고 비용 등 뒷감당 안돼 주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판...계도기간이라도 늘려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앞둔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에서 직원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서울경제DB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앞둔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에서 직원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최근 수주물량이 지난해에 비해 15% 이상 늘고 있는데 눈물을 머금고 들어오는 주문을 포기해야 할 상황입니다. 내년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는데 덜컥 주문을 받았다가 납기를 제때 맞추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죠. 속 모르는 사람들은 인력을 더 뽑으라고 하지만 채용하고 싶어도 숙련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이 100여일 앞으로 바짝 다가왔지만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견·중소기업의 대부분은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직원 60명 규모의 주물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사의 이현도(가명) 대표는 최근 추가 채용을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접었다. 이 업체는 조선업 경기가 살아나면서 평일에 2시간, 주말에는 20시간 가까이 연장근로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16시간에 달하는 초과근무를 줄여야 한다. 이 대표는 “연장근로의 경우 통상임금의 1.5배를 수당으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이 지금보다 30%나 늘어난다”며 “매출이 회복세를 타고 있어 사람을 더 뽑고 싶어도 경기 자체가 워낙 불확실해 뒷감당이 안 된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주변의 업체들도 추가 채용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일이 몰릴 때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단기 아르바이트로 쓰는 곳만 늘고 있다”며 공단 분위기를 전했다.


전체 매출의 30%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는 플라스틱 사출 성형 업체 B사의 김우식(가명) 대표는 “해외 업체들과의 경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데 인건비나 재료비 등 제반비용은 늘어나고 있어 수출 경쟁력 악화가 걱정”이라며 장탄식을 쏟아냈다. 김 대표는 “올해까지 최저임금만 30%가 오른 상황이어서 (인건비 부담 때문에) 내년에는 일감이 들어와도 마음 놓고 받을 수가 없다”면서 “원가는 자꾸 올라가는데 납기를 제대로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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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쪼개기’ 등 고육지책에 ‘수주·고용 포기’ 속출 우려=전국에 산재한 산업공단이나 벤처단지 등 산업 현장은 벌써부터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직원 수가 290명인 한 발전 업체 관계자는 “100% 수주에 의존하는 업종 특성상 근로시간을 특정할 수 없어 법 준수 자체가 어렵다”며 “덜컥 채용부터 하면 돌발상황에 대처하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어쩔 수 없이 회사 쪼개기에 나서는 곳도 적지 않다. 경기도 반월공단의 한 주물 업체는 근로시간 규제를 피해 조형 파트, 후처리 공정 등을 중심으로 별도 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자회사를 만드는 데 따른 비용 부담에다 법적 서류 작업 등도 번거롭지만 비즈니스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단이라는 설명이다. 중소 규모의 전선 업체 C사의 경우 내년부터 수주한 물량의 일부를 자회사로 넘기기로 방침을 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회사 임원은 “해외에서 수주한 물량 100%를 모두 받기에는 지금 인원으로는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자회사에 일감을 넘길 것”이라며 “그나마 자회사가 없었으면 사실상 수주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쇄 업체를 운영하는 김남수 중소기업중앙회 서울지역회장도 “출판인쇄 업체의 경우 업종 특성상 주말·밤샘 작업이 많은 편”이라며 “당장 내년부터 적용 대상이 되는 중소기업들은 대안을 마련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전문경영인(CEO)들은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형국’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형 업체 D사의 최형수(가명) 대표는 “경영진은 비용 상승에다 직원들의 신고에 따른 법적 문제를 우려하고 직원들은 근로시간 축소로 월급이 15~20% 줄어 고민이 크다”면서 “가뜩이나 글로벌 불황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경영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상대로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기(中企) “계도 기간이라도 늘려달라” 한목소리=범법자는 될 수 없다는 절박함에 제도 시행을 준비하는 모습도 감지된다. 보안 업체 에스원이 내년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기업을 대상으로 선보인 ‘PC 오프 렌털 시스템’의 경우 올 7월 한 달 판매량이 전년 대비 435%나 폭증했다. 근태 관리를 통해 생산성 누수를 최소화하려는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기업 규모가 작고 영세할수록 준비 자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대표는 “제도 시행 연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계도(처벌유예) 기간만이라도 최대한 길게 설정해 기업의 숨통을 터줬으면 한다”며 “특히 정치권이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현재 3개월에서 6개월 이상으로 충분히 늘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 향상을 유인하기 위한 인센티브 부여 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고 노사 간, 기업 간 생산성 향상과 관련한 성과공유 역시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상훈·양종곤기자 shlee@sedaily.com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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