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靑·국회에 호소했지만 달라진 것 없어"…모래성 된 샌드박스

[결국 문 닫은 '규제 임시허가 1호' 中企]

임시허가 내내 관련부처 비협조

샌드박스 '자율출시' 결정됐지만

기술기준 없이는 정식허가 안돼

"관료주의에 개혁 불가능" 울분

"새 기준 제정하면 다른 기업들에

부담 줄 수 있어" 국표원 반박

지난해 1월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왼쪽) 국무총리가 규제 샌드박스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지난해 1월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왼쪽) 국무총리가 규제 샌드박스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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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투스 전자저울을 개발한 중소기업 그린스케일의 설완석 대표는 지난 2011년 1억2,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창업에 도전했지만 규제가 걸림돌이었다. 저울을 통한 계량값은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여서 시험과 인증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 이런 상황에서 이전 정부가 2015년 발표한 임시허가제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흥분은 4년이 지난 현재 좌절로 변했다. 설 대표는 “2년짜리 임시허가 만료(2017년 10월)를 앞두고 정식허가 전환을 위해 각 유관부처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상대해야 했고, 그때마다 ‘관료주의’의 벽에 부딪혀야 했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네트워크 저울은 생산자가 농산물을 올려놓으면 무게 측정값은 물론 작업대상·시간·위치 등 각종 데이터를 블루투스로 스마트 기기에 전송하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저장·관리·분석해주는 신기술이다. 데이터는 국가 농산물이력추적시스템에도 자동 연계돼 소비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언제·어디서 생산된 농산물인지 실시간 확인하고 생산자와 직거래도 할 수 있다. 당시 그린스케일에 임시허가를 내준 사례를 정부는 대통령 주재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직접 거론하고 규제개혁백서에도 기록할 만큼 대표적인 성과로 홍보했다. 그러나 그린스케일에 대한 임시허가 기간이 끝날 때까지도 관련 부처는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루투스 저울의 핵심 연계 기능인 농산물이력추적시스템의 경우 농림축산식품부가 활성화를 약속했지만 빈말이 됐다. 2015년부터 2017년 6월까지 시스템의 일 평균 이용자는 24명에 그쳤다.

국가기술표준원의 경우 그린스케일의 전자저울에 형식승인을 내줬다. 국표원 관계자는 “형식승인 자체가 정식허가와 마찬가지여서 블루투스 전자저울은 시장 출시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설 대표는 “새로운 기술 기준에 따른 정식허가가 아니라서 상용화가 불가능한 것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법제연구원도 “블루투스 전자저울에 대한 기술적 검토 기준이 마련돼야 하지만 현재 기술 기준 제정이 충분히 진행되지 못했다”며 “정식허가 전환이 되지 않으면 무허가사업자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표원 관계자는 “그린스케일의 요구대로 전자저울 형식승인 기준에 데이터 전송 과정에 대한 새 기준을 추가할 경우 다른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불필요한 규제가 오히려 보태지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린스케일은 재차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해 올 4월 ‘자율출시’ 결정을 받았지만 무용지물이 됐다는 게 설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파트너 기업은 정식허가가 나올 때까지 협력사업을 중지하겠다고 통보했고 회사는 5억원의 빚더미에 올랐다”며 “시장 출시를 위한 제도적 기반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품에 투자를 해줄 곳은 없었다”고 했다. 결국 그린스케일은 5월 세무서에 의해 직권 폐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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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표는 국회가 조사권을 발동해 관료의 소극 행정을 바로잡아달라며 이달 17일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청원에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인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배숙·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이 소개 의원으로 참여했다. 수년간 관계부처는 물론 청와대와 감사원·국회에까지 민원을 넣고도 실패한 끝에 하는 마지막 시도다.

설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 같은 임시허가가 가지는 맹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샌드박스에 선정된 기업들은 정식허가 전환이 안 될 경우 임시허가로 내놓은 제품과 서비스를 철수해야 한다”며 “이는 사용자 피해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그린스케일과 비슷하게 임시허가를 받은 기술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 제외하고 모두 ‘시도’에만 그쳤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임시허가가 만료된 후 겪는 어려움을 예상해 처음부터 해외에서 서비스를 개발·출시하려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며 “규제 샌드박스는 긍정적인 시도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라고 말했다.

가장 큰 장벽은 공무원의 소극 행정이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규제 혁파를 위해 필요한 것은 규제 샌드박스나 각종 특별법 같은 ‘새로운 법’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설 대표는 “규제 개혁이 더딘 것은 법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법의 목적대로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하고 집행만 하면 된다”고 꼬집었다./조양준·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세종=조양준·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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