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글로벌What] 사우디-이란 대리전 60년…서방 셈법까지 얽혀 '머나먼 출구'

■사우디 피격 '트리거' 예멘 내전

1962년 군부쿠데타로 첫 내전

사우디·요르단, 왕당파 돈줄대자

이집트, 공화파 지원 대리전 비화

2000년대 들어 후티 반군 봉기

勢 키우자 수니파 사우디 동맹 결성

패권 다투던 이란은 반군 지원

UAE, 병력 철수…동맹 분열 조짐

종전땐 美·유럽 '전쟁 특수' 끝

이해 달라 중동정세 '예측불허'

무장한 예멘 후티반군 병사들이 17일(현지시간) 수도 사나에 모여 병력을 과시하고 있다. 후티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을 불법 침략한 대가로 14일 자신들이 사우디 석유시설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사나=AFP연합뉴스무장한 예멘 후티반군 병사들이 17일(현지시간) 수도 사나에 모여 병력을 과시하고 있다. 후티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을 불법 침략한 대가로 14일 자신들이 사우디 석유시설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사나=AFP연합뉴스



“예멘 침략과 봉쇄가 계속된다면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공격은 더 강력하고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원유시장이 안정되기를 원한다면 사우디가 더 이상 예멘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무함마드 압둘살람 예멘 후티반군 대변인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발생한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석유시설 두 곳에 대한 공격과 관련해 최근 트위터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당사국인 사우디와 미국이 이번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對)이란 제재 강화에 나섰지만, 애초에 사우디 공격주체를 자처한 것은 예멘의 후티반군이었다. 후티반군은 예멘 내전에서 이란의 지원으로 사우디 등 동맹군의 지원을 받는 정부 세력과 대립하고 있다. 이란 석유시설을 타격한 드론과 미사일이 예멘이 아닌 이란에서 날아왔다는 근거들이 제시되면서 결국 이번 사태 역시 아랍권의 양대 맹주인 사우디와 이란, 그리고 사우디를 지원하는 미국까지 얽힌 전형적인 중동 패권다툼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 국제사회의 관심은 첨예하게 엇갈린 이해관계의 틈바구니에서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예멘 내전으로 향하고 있다.

예멘의 해묵은 내전은 시초부터 주변 세력들이 뒤얽힌 대리전 양상을 보여왔다. 사우디가 예멘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왕당통치가 오랜 기간 이어지던 북예멘에 1962년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공화제 정권이 수립되면서부터다. 쿠데타로 밀려난 왕당파가 공화파에 저항하면서 최초의 내전이 발생했고 이는 곧 대리전으로 비화했다.

당시 사우디와 요르단의 지원을 받은 왕당파와 이집트가 전면 지원한 공화파 간 싸움은 어느 쪽도 큰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미국과 유엔의 중재로 1967년 8월 종식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권력 다툼이 이어졌고 1978년 쿠데타를 일으킨 알리 압둘라 살레가 북예멘 정권을 장악하고 장기집권에 들어갔다. 이후 남북 간 합의로 통일정부가 구성되기도 했으나 1994년 남예멘의 분리독립 선언, 남부 지역의 분리주의운동으로 내전은 지속됐다.


사우디 석유시설 공격의 배후를 자처하는 후티반군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예멘 북부 사다 지역을 본거지로 삼은 후티반군은 2004년 지도자 후세인 바드레딘 알후티가 사살된 후 정부군과 전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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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반군과 정부군의 교전으로 긴장이 높아진 예멘 상황은 2011년 다소 양상이 달라졌다. 이른바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중동·아프리카 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33년간 집권한 살레가 2012년 2월 하야하고 부통령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가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4년 7월 후티반군이 하디 정부를 상대로 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예멘은 본격적인 내전에 돌입한다. 후티반군은 시아파인 정부군을 축출하고 수도 사나 등 예멘 북부지방을 점령해나갔다.

이후 내전은 사우디의 개입으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수니파 이슬람 세력의 맹주인 사우디는 후티반군이 득세한 배후에 이슬람 세계를 양분하는 시아파의 맹주 이란이 있다고 판단하고 걸프지역 수니파 정부를 규합해 예멘 정부를 지원하고 나섰다.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예멘을 후티반군이 장악하면 예멘과 남부 국경을 접한 사우디는 이란·이라크·예멘 등 삼면이 시아파 정부에 둘러싸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집트·모로코·요르단·수단·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구성된 사우디 동맹군은 2015년 3월 ‘단호한 폭풍’ 작전을 통해 전방위로 예멘을 압박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사우디의 전력에 힘입어 쉽게 끝날 듯했던 내전은 이란을 등에 업은 후티반군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장기화하고 있다.

여기에 사우디 동맹군으로 반군 공격에 참여했던 UAE와 사우디 간 분열까지 더해져 내전양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지난달 UAE의 지원을 받는 예멘 분리주의 무장조직 남부과도위원회(STC) 신병훈련소를 반군이 탄도미사일로 공격한 사건을 두고 STC 측은 정부군과 연계된 무장조직과 반군이 공모했다고 의심하는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은 사우디와 UAE가 후티반군이라는 공공의 적에 맞서 손을 잡아왔지만, 이 공격을 기점으로 친정부 진영 내부에서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이 인구의 90%인 UAE의 경우 외국인 자본 이탈을 우려해 예멘 주둔 병력을 상당수 철수하며 예멘 내전에서 발을 빼는 모양새지만, 여전히 예멘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알자지라 방송은 “UAE가 철수하면서 임시수도인 아덴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STC를 부추겼다는 소문이 돈다”고 전했다.

여기에 무기를 판매하며 사우디 주도 연합군을 후방 지원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예멘 내전 종식은 무기시장의 축소를 의미할 수 있다는 점도 내전을 복잡하게 만드는 변수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우디에 대한 추가 공격을 막으려면 예멘 내전이 멈춰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의 패권을 놓고 다투는 이란과 사우디뿐 아니라 서방국가들의 셈법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예멘 내전의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져 중동 정세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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