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여의도 오피스빌딩을 인수한 자산운용사들이 고민에 빠졌다. 오피스텔이나 레지던스로 바꿔 개발 분양하면 1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할 것이란 기대감에 웃돈을 주고 건물을 사들였는데 사업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아서다. 여의도 권역에 대규모 신축 오피스 공급이 예정된 상황에서 운용사들이 대규모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부동산 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자산운용사들은 여의도 NH투자증권(005940) 본사 사옥과 메리츠화재 본사사옥, 그리고 유수홀딩스(구 한진해운) 사옥 등을 잇달아 사들였다. NH투자증권 본사는 마스턴투자운용이 2,438억원에 매입할 예정이다. 메리츠화재빌딩은 베스타스자산운용이 1,200억원에 매입했다. 유수홀딩스 빌딩은 3,000억원대에 MDM투자운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운용사들은 인수한 오피스를 분양형 주거시설로 바꿔 개발하겠다는 계획으로 시세 대비 30% 이상 웃돈을 주고 건물을 사들이고 있다. 메리츠화재빌딩과 유수홀딩스 빌딩은 여의도 권역 최고가인 평당 2,200만원에 거래됐다.
운용사들의 투심을 자극한 것은 최근 분양에 성공한 오피스텔 ‘브라이튼 여의도’다. 부동산 디벨로퍼 신영은 여의도 MBC 부지를 인수해 평당 4,500만원의 고급 오피스텔로 개발해 소위 ‘대박’을 냈다.
하지만 최근 오피스를 사들인 운용사들이 브라이튼 여의도의 성공 사례를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브라이튼 여의도와 달리 최근 운용사들이 사들인 오피스들은 모두 여의도 금융중심지구 내에 위치한다. 서울시는 2010년 1월 28일 특정개발진흥지구 지정을 통해 여의도 금융중심지구 내 금융권 기업이 입주하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해왔다. 금융기관 집적을 유도해 시너지를 내는 한편 체계적인 지구 관리를 위해서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 도시계획국은 내년 6월 새로운 금융중심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해 발표할 예정이다. 물론 지구 계획상으로 생활형 숙박시설 등 일부 분양형 시설은 공급할 수 있다. 다만 새로 나올 지구 단위 계획은 어떤 식으로 바뀔지 가늠하기 힘들다. 정부가 분양형 주거시설의 고가 분양에 대해 여러 차례 부정적 시각을 내비친 상황에서 오피스를 고가 분양형 주거시설로 우회 개발하는 방식을 허가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요 사업들은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마스턴자산은 NH투자증권 사옥을 생활형 숙박시설 275가구(전용 26평)로 바꿔 평당 6,100만원(가구당 16억원)에 분양해 13%의 수익률로 계획했다. 그러나 기존 계획과 달리 후면에 오피스를 증축해 개발하는 방식을 추진 중으로 전해졌다. 메리츠화재 빌딩을 인수한 베스타자산운용은 오피스를 섹션별로 분양해 매각하는 플랜B를 추진하고 있다. MDM자산운용은 이달 셋째 주까지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정식 계약을 체결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양형 사업이 막히면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여의도는 대규모 신규 물량 공급으로 공실 우려가 커지고 있는 탓이다. 여의도에서는 파크원(11만평)을 비롯해KB금융타운(2만평), 우체국 빌딩(2만평), 사학연금 재건축(4만2,975평) 등 다수의 대형 오피스 공급이 예정돼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확실한 인허가 상황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한 것이 패착”이라며 “정부가 고분양 주거시설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만큼 여의도 고가 분양 흥행이 이어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