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조국, 학종에 조종(弔鐘)을 울리다

권구찬 선임기자

사회적 지위가 스펙 창조·학벌 세습

교육이 불평등 확대 재생산해서야

신뢰잃은 입시공정성, 운명을 다해

비교과 전형요소 과감히 도려내야

권구찬 선임기자권구찬 선임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던 6일은 2020학년도 대학 수시 전형 원서접수 첫날이었다. 기자의 딸아이도 대학 문을 두드리는 바로 그 대열에 있었다. 수능 중심의 정시를 선택할 줄 알았던 딸이 수시 전형에 응한다는 것이 의외였지만 어차피 수시 원서 카드 6장을 버릴 게 뭐 있느냐 싶어 딸이 쓴 자기소개서 퇴고를 도와줬다. 근데 어찌나 좌절감과 무력감이 들었는지. 해마다 이맘때 입시 홍역을 치러봤던 학생과 학부모들은 다 알 것이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인데도 조국 딸의 황제 스펙이 떠오른 건 어쩔 수 없었다. 제목부터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의학논문 제1저자에 떡하니 오르고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 기회를 가졌던, 그 화려한 스펙 말이다.

“모두가 용이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가 없다”던 조 장관의 2012년 트윗은 “니네 부모를 원망하라”는 2014년 최순실 딸 정유라의 SNS 글과 오버랩되면서 점차 분노 게이지를 올려놓았다. 유시민의 황당한 궤변은 염장을 제대로 질렀다. “조국만큼 모든 걸 가질 수 없어 분기탱천했다”고 싸잡아 비판한 기자들 중 한 명이니 말이다. 기자를 흔히 ‘기레기’라고 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잘생겼다’며 조국을 지지하던 딸아이도 ‘왕짜증’이라고 등을 돌린 것을 보면 그가 진영 논리에 갇혀 조국 사태의 본질을 읽어낼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것 같아 측은한 심정까지 들었다.


‘8·9개각’ 이후 한 달 넘게 이어온 조국 사태에 가장 분노하는 세대는 젊은 층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지난주 여론조사를 연령대별로 보면 20대의 긍정적 여론이 38%로 60대 다음으로 낮았다. 만약 10대 고교생을 포함해 조사했더라면 젊은 층의 지지율이 5060세대 못지않게 낮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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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공정한가에 대한 오래된 의문이 지난해 숙명여고 사태 때 폭발했다면 조국 사태는 부조리의 끝장을 보여줬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자녀의 대학 입시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무리 용을 써도 잡지 못할 기회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고교생을 병리학 논문 제1저자로 올려준 대학교수는 이를 선의라고 했다. 흐릿한 윤리의식을 보면 그 누군가의 기회를 박탈한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느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관행적으로 다들 그렇게 해왔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겠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 6일 고려대학교 민주 광장에 조국 딸 입시 특혜 의혹 관련 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학생들은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묻고 있다./연합뉴스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 6일 고려대학교 민주 광장에 조국 딸 입시 특혜 의혹 관련 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학생들은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묻고 있다./연합뉴스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계층이동의 통로가 점점 좁아져왔다. 고등교육의 기회는 그나마 헐거워진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이어주는 구명줄이었다. 하지만 학종은 바로 그 마지막 남은 사다리마저 걷어찬 것임이 조국 사태로 재확인됐다. 공정해야 할 고등교육 기회조차 잘못 설계돼 부모의 기득권이 자녀의 스펙을 창조하고 학벌을 대물림했다. 교육이 불평등 확대를 재생산한 부조리의 정점에 학종이 있다. 학종의 비교과 평가는 사실상 애초부터 계량화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대학 전형 과정에서 또 어떤 반칙과 부정의 판도라 상자가 열릴지 모를 일이다.

학종을 죄다 없애고 100% 정시로 뽑자는 말은 아니다. 사회적 배려자 등이 지원하는 기회균형 전형이 있고, 학종의 원래 취지대로 특별한 재능과 잠재력을 보는 특기자 전형도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문 대통령의 입시 전반 개편 지시에 대해 정시 확대 없이 미세 조정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조차 입시는 “공정하고 단순해야 한다”고 주문하지 않았나. 그러자면 비교과 전형 요소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길밖에 없다. 4,000자 분량의 방대한 자소서도 지원 동기 중심으로 간소화해야 한다. 수시에 지나치게 쏠린 무게중심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도 있다. 학종의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면서 그 운명이 다했음을 조국 사태는 알리고 있다.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chans@sedaily.com

권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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