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트럼프의 이란정책과 손자병법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美, 막무가내식 핵합의 파기에

이란 항복커녕 무력대응 맞서

'지도자가 성급·오만하면 패배'

손자병법 구절 가슴에 새겨야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적이 결정한다.’ 미군 지휘관들이 즐겨 인용하는 구절이다.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이 군 장성 시절 워낙 자주 입에 올려 마치 그가 한 말처럼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은 ‘적을 알라’는 병법의 지혜를 일러줬던 고대 중국의 전략가 손자가 남긴 말이다.


‘손자병법’에 등장하는 그 구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정책에 담긴 핵심적 오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올여름 유출된 2018년도 비밀 외교전문에 당시 워싱턴 주재 영국 대사였던 킴 대럭은 대다수의 옵서버들이 너무도 잘 아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써놓았다. ‘트럼프가 이란 핵 합의에서 발을 뺀 것은 그것이 버락 오바마 주도로 성사된 거래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핵 합의 파기 이후 대응방법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또 대럭은 이 문제와 관련,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거리 두기를 시도하면서도 이것이 마치 ‘대통령의 결정’에 따른 것인 양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내 정치적 이유로 이뤄진 미국의 이란 핵 합의 탈퇴결정은 심각한 지정학적 결과를 초래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은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일방적 제재를 준수하도록 강요한다면 넉넉히 테헤란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는 예상에 근거한 베팅이다. 그러나 미국이 가하는 압박의 목적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탓에 트럼프 행정부가 마구잡이로 이란인들의 숨통을 죄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테헤란은 일단 기존의 핵 합의를 고수하면서 다른 나라들과의 교역을 유지하는 등 미국을 비껴가려는 절제된 초기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달러화를 중심축으로 구축된 국제 금융 시스템 때문에 미국의 제재가 먹힌 것이다. 이란의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석유 수출은 곤두박질쳤다. 달러화의 역할남용에 화가 치민 유럽 국가들은 대체결제 시스템을 창설하려 시도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초기 대응이 빗나가자 이란은 미국이 구사하는 방식의 최대 압박전략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이란은 페르시아만을 경유하는 선박들을 억류하는 등 강경조치를 통해 세계 전체 석유공급량의 20%가 비좁은 해협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어 미국의 드론을 격추한 이란 정부는 펜타곤을 향해 이 지역에서 미국의 정보와 첩보수집 활동을 제약할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뿐만 아니라 테헤란은 중동지역의 대리인들과 우방국들을 이용해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석유 처리시설에 정밀타격을 가했고 사우디 석유생산량은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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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란에 대한 적대감이 중동지역 전역으로 번질 경우 지구촌 석유공급이 심각하게 교란될 것이라는 경고다. 적은 결정을 내렸고 그들의 행동은 트럼프 행정부의 예상과 딴판이었다.

이란에 가한 미국의 최대 압박은 테헤란의 태도를 순화시키지 못했고 그들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지도 못했다. 단지 이란을 자극해 보복에 나서게 했을 뿐이다. 경제제재의 현상유지는 이란을 힘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은 미국을 상대로 도발적이거나 심지어 위험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차라리 유리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이슬람공화국 내부의 국내 정치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적 요인이다. 이란의 기존 핵 협정은 워싱턴의 강경론자들 사이에 인기가 없었지만 테헤란의 강경론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테헤란 일부 강경론자들은 수석 협상가인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을 탄핵하기를 원했다. 자바드가 오바마와 악수를 했다는 것이 그의 축출을 요구하는 이유였다. 핵 협정에 반대하는 이란인들은 제재해제와 국제 경제로의 복귀를 허용한다는 미국의 약속에 대한 대가로 테헤란이 보유한 농축 우라늄의 98%를 해외로 반출하고 플루토늄 원자로에 시멘트를 쏟아부어 재가동 불능상태로 만들라는 워싱턴의 무리한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등 중대한 양보를 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약속을 파기할 것으로 내다봤던 이란 강경론자들은 우려했던 대로 트럼프가 핵 합의를 깨자 그럴 줄 알았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실제로 우방국들에 관해 매티스가 만들어낸 한 줄짜리 명언이 있다. “우방국들과 함께하는 나라는 흥하고, 우방국들이 없는 나라는 쇠퇴한다”가 그것이다.

우방국들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이 이란을 겨냥한 새롭고도 위험스러운 전략을 시행하기로 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다른 무엇보다 트럼프는 유럽 우방국들을 홀대했고 이것이 매티스가 국방장관직에서 물러나는 주된 이유로 작용했다. 그들 역시 결정을 내렸지만 미국에 도움이 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고 미국 정책을 적극적으로 좌초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사우디의 충직한 맹방인 아랍에미리트(UAE)조차 최근 몇 달 동안 리야드와 거리 두기를 시도했으며 실패로 간주되는 예멘내전 개입에서 발을 빼고 있다.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자는 지도자가 언제 싸워야 할지를 제대로 알고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반면 지도자가 무모하고 성급하며 오만하면 패배를 피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기원전 6세기에 이뤄진 시의적절한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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