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대법원이 의회 정회 문제를 ‘위법’이라고 판결하면서 거센 사임 압박을 받는 등 취임 두 달 만에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로 남을 것”이라는 비아냥 속에 존슨 총리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일정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사임을 압박하는 의회를 상대하기 위해 급히 런던으로 되돌아갔다. 존슨 총리는 의회에 즉각 반격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정치적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은 그가 추진해온 오는 10월31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강행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24일(현지시간) BBC와 파이낸셜뉴스(FT) 등 영국 언론들은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존슨 총리가 이날 밤 급히 런던행 비행기로 귀국길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당초 25일 오후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장기간 의회를 중지한 정부의 조처가 ‘위법이며 무효’라는 대법원 결정이 전날 나오면서 이날 의회 재개가 예고되자 남은 일정을 단축하고 서둘러 귀국한 것이다.
앞서 유엔본부에서 존슨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10월31일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는 자신감을 내보였지만, 안방 사정은 존슨 총리의 생각보다 여의치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정회 문제에 관한 소송 결과가 나오자 야당을 중심으로 존슨 총리를 겨냥한 사임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이날 “존슨 총리는 국가를 잘못 인도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총선으로) 선출되지 않은 총리는 즉각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표인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도 영상성명을 통해 “총리가 점잖고 품위 있게 사의를 밝히려 하지 않는다면, 의회가 힘을 합쳐 그를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압박했으며 제4당인 자유민주당의 조 스윈슨 대표와 녹색당의 캐럴라인 루카스 의원 등도 존슨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BBC는 존슨 총리가 소속된 집권 여당인 보수당 내에서도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총리 퇴진론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존슨 총리는 귀국 후 즉각 반격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브렉시트 강행을 위해 하원에서 실시된 여섯 번의 표결에서 모두 패배하는 등 정치적 입지가 좁아져 선택지가 제한적이라고 영국 언론들은 분석했다.
궁지에 몰린 존슨 총리에게 남은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위기 돌파에 가장 최우선으로 꼽히는 것은 10월31일 전까지 유럽연합(EU)과 브렉시트 합의안을 도출해 이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존슨 행정부는 EU와 새로운 합의를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EU와의 합의가 쉽지 않고, 25일 오전부터 하원이 다시 열리면서 야당을 중심으로 공격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여 존슨 총리는 조기총선과 정회를 다시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날 존슨 총리 내각 소식통을 인용해 존슨 총리가 세 번째로 조기총선 표결을 시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고위각료들이 세 번째 조기총선 표결에서도 패배한다면 다시 정회를 시도해 대법원의 결정에 저항하라고 존슨 총리를 설득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조기총선을 위해 스스로 불신임을 시도하는 자해 방법으로 돌파구를 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에 찬성표를 던져 출당된 데이비드 고크 전 법무장관은 BBC 프로그램에서 “불신임안이 가결되면 총리가 물러나고 의회는 14일간 새 정부를 구성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며 “노동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새 정부 구성 가능성은 작고, 자연히 조기총선 정국이 열리는 것을 노려 노딜 브렉시트를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