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마녀사냥”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얘기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탄핵되면 “증시가 붕괴될 것”이라는 겁니다. 탄핵으로 정국이 혼란해지면 증시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여기에는 자신이 중국을 몰아붙이면서 최고의 경제성적을 내고 있다는 자신감도 보입니다. 자신이 없이는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얘기죠. 실제로는 어떨까요? 미 대통령 탄핵이 증시 폭락으로 이어질까요?
클린턴, 탄핵정국 때 S&P 28%↑
미 경제방송 CNBC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냈습니다. 투자자들이 하원의 트럼프 탄핵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때와 같은 주식시장 상승에 베팅을 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를 포함해 잇단 성추문에 하원에서 탄핵되고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됐습니다. 트럼프의 사례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는 얘기인데요,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이 알려지기 시작한 1998년 1월 대비, 상원에서 탄핵이 부결된 1999년 2월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 500 지수를 비교해보면 무려 28%나 상승했다는 겁니다. 중간에 러시아 위기와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에 따른 후폭풍으로 주가가 폭락한 적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탄핵정국에서 주가는 올랐다는 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떨까요. 아직 탄핵조사가 시작된 지 며칠 안 돼 결론을 내리기 이릅니다만, 현재 기준으로만 보면 탄핵조사 추진 소식이 처음으로 증권가에 알려진 24일(현지시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142.22포인트(0.53%) 떨어진 26,807.77에 마감했습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은 -0.84%, 나스닥은 -1.46%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날인 25일에는 다우지수가 0.61%, S&P 500은 0.62%, 나스닥은 1.05% 상승했습니다. 탄핵 소식에도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낙관론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26일과 27일에도 연속 하락했는데, 이중 27일은 미국 정부가 중국 기업을 미국 증시에서 퇴출시키는 방안도 고려한다는 초강경론이 불거지면서 시장을 부담을 준 측면이 큽니다.
물론 닉슨 때는 주가가 떨어졌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 대통령은 사건이 불거진 뒤 1년 후 주가가 무려 33.4%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 때는 전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오일쇼크가 있었다는 점과 주가도 이미 하락세로 접어들고 있었다는 부분을 고려해야 합니다. 정리하면 탄핵이 주가 폭락의 핵심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트럼프가 탄핵 되면 경제에 좋다”는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미중·이란 등 트럼프 돌발행동이 더 큰 변수
시장에서는 탄핵조사 그 자체보다 탄핵정국이 미중 무역협상과 이란 문제 해결에 미칠 영향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탄핵 자체가 주식을 떨어뜨리게 하는 게 아니라 탄핵국면을 돌파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나 과격한 말이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뜻입니다.
실제 투자은행(IB) JP모건은 “탄핵 노력이 잠재적으로 시장에 미중 무역전쟁과 미·이란 관계 등에 와일드 카드를 제시한다”며 “그동안 트럼프의 발언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탄핵의 과정이 주식 같은 자산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쉽게 말해 미중 무역전쟁과 이란과의 관계에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상황이 뒤집히고 시장이 출렁이는 만큼 이번에도 탄핵 자체보다 이를 이겨내려는 트럼프의 돌발행동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앞서 JP모건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과 금리의 상관관계 분석을 위해 만든 ‘볼피피 인덱스(Volfefe Index)’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채권시장 개장 시간 동안 4,000여개의 트윗을 올렸고 이중 146개가 시장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트윗은 특히 2년물과 5년물 미 국채 금리의 변동성을 키웠는데요. 시장에 영향을 준 트윗의 키워드는 ‘중국(China)’과 ‘10억(billion)’ ‘제품(product)’ 등이었습니다.
월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과정을 거치면서 미중 무역협상 같은 곳에서 작은 성과라도 내게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이 경우 국민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이는 주가에도 호재입니다. 국면전환을 위해 중국에 초강경 카드를 꺼내면서 압박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거꾸로 스몰딜을 통해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이 경우 클린턴 때의 주가랠리가 재현될 수도 있습니다.
워런에 떨고 있는 월가
아마도 월가가 주가폭락에 더 신경쓰고 있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인 것 같습니다. 월가의 워런 포비아는 심각합니다. CNBC는 최근 “월가의 민주당 후원자는 민주당이 워런을 대선 후보로 지명하면 밖으로 나가거나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미국에서는 사실상 월가의 지지 없이는 대통령 되기가 어렵습니다. 월가는 기본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데 그나마 있는 월가 후원자가 워런이 되면 후원을 철회하겠다는 것이죠.
미국에서는 워런 의원을 좌파 중에서도 급진적이라고 봅니다. 월가의 반감은 더하죠. 워런 의원은 이번 대선에서 월가 개혁과 대기업 증세, 부유세 도입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상태입니다. 5,000만달러~10억달러 자산에는 2%, 10억달러 이상에는 3%의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이죠. 월가가 반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워런 의원의 상승세가 무섭습니다. UC버클리와 LA타임스의 캘리포니아 지역 공동 여론조사에서 워런은 지지율 29%로 바이든(20%)을 9%포인트 앞섰습니다. 대선 풍향계인 뉴햄프셔에서도 바이든 전 부통령을 제쳤죠. 전국단위 퀴니피액대 여론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27% 대 25%로 앞서죠. 워런 의원의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과 2020년 당선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게 됐습니다.
이 경우 주식시장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마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CNBC는 “만약 워런 의원이 모든 사람에게 의료보험을 해주는 방안을 실제로 통과시킨다면 그때는 보험회사들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주식시장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는 얘기죠.
어쨌든 워런 의원은 월가의 경고가 두렵지 않은 듯합니다. 그는 26일 “나는 부유하고 연줄이 든든한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일하는 경제와 정부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물러설 의사가 없음을 밝혔죠. 어떤 식으로든 이번 미 대통령 선거는 정치뿐 아니라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의미도 크고 궁금증도 많은 선거입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