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문제는 기후야"…오스트리아 총선 녹색당 '파란'

■'초록물결' 뒤덮은 유럽 표심

기록적 폭염 등 환경이슈 타고

원외정당서 23석 '4당' 확실시

反난민 극우 열풍은 한풀 꺾여

우파 국민당 38% 득표 승리 전망

쿠르츠 '최연소 총리' 탈환 눈앞

녹색당·네오스 3각연정 가능성

연정 구성해도 정책 조율 쉽잖아




29일(현지시간) 치러진 오스트리아 조기총선에서 지금까지 원외정당에 머물렀던 녹색당이 파란을 일으켰다. 올여름의 기록적 폭염 등 기후변화 불안에 민감해진 유권자들의 표심이 대거 녹색당으로 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녹색당의 약진은 오스트리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녹색당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지지세를 불리고 있다. 유럽 정치권에서 한동안 돌풍을 일으켰던 극우정당의 상승세가 주춤한 가운데 새롭게 일고 있는 ‘초록 물결’이 유럽의 정치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스트리아 내무부의 개표 잠정 집계에 따르면 38.4%를 득표한 우파 국민당의 총선 승리가 유력시된다. 이에 따라 당 대표인 제바스티안 쿠르츠(33) 전 총리가 세계 최연소 지도자 자리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쿠르츠 총리가 의회의 불신임을 받아 치러진 이번 선거의 공식 개표 결과는 10월16일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녹색당의 가파른 약진이다. 녹색당은 12.4%의 득표율을 기록해 국민당·사민당·자유당에 이어 제4당을 차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2017년 총선에서는 4% 미만을 얻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불과 2년 만에 총 183석 중 23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지 매체들은 과반 확보에 실패한 국민당이 연정 파트너로 녹색당을 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녹색당·네오스와 함께 ‘3각 연정’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쿠르츠 대표는 이미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번 총선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얻은 사민당과의 연정 가능성을 배제했다. 다만 좌파 성향의 녹색당이 우파 국민당과 이주민이나 환경 등 여러 정책에서 이견을 드러낼 확률이 커 연정을 구성해도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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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총선 직후 빈에서 열린 TV토론회에서 베르너 코글러(왼쪽부터) 녹색당 대표, 제바스티안 쿠르츠 국민당 대표, 노르베르트 호퍼 자유당 대표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정권의 연정 파트너인 자유당과 결별한 국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파란을 일으킨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빈=EPA연합뉴스29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총선 직후 빈에서 열린 TV토론회에서 베르너 코글러(왼쪽부터) 녹색당 대표, 제바스티안 쿠르츠 국민당 대표, 노르베르트 호퍼 자유당 대표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정권의 연정 파트너인 자유당과 결별한 국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파란을 일으킨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빈=EPA연합뉴스


녹색당의 ‘대약진’은 올여름 유례없는 폭염으로 유권자들이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민감해진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유럽에서는 7월 40도를 훌쩍 넘는 이상고온 현상이 이어져 벨기에와 프랑스 파리 등 각지에서 역대 최고 기온을 잇따라 경신했다. 특히 이번 오스트리아 총선은 전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명이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한 ‘환경파업’ 집회가 열린 지 이틀 만에 실시되면서 환경 이슈가 부각됐다. 스웨덴 출신 청소년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가 주도한 이 시위에 오스트리아에서도 전국적으로 15만명이 참여했다.

특히 환경 이슈에 민감한 청년층이 녹색당 지지 성향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29세 이하 청년 유권자들의 녹색당 지지율은 국민당과 동일한 27%를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의 기록적인 폭염, 사라져가는 빙하와 말라 죽어가는 숲에 대한 우려로 기후변화가 유럽연합(EU)의 정치를 바꾸기 시작했다”며 “‘그레타 효과(Greta Effect)’가 오스트리아 정치를 뒤흔들었다”고 분석했다.

오스트리아뿐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녹색당이 집권당인 기독민주당의 아성을 넘볼 정도다. 지난달 5일 현지 공영방송 ZDF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녹색당의 당 지지율이 24%를 기록해 28%로 1위를 차지한 기민당을 바짝 뒤쫓고 있다. 5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21%를 득표해 제2당으로 떠오른 뒤에도 지지세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노르웨이에서도 이달 초 진행된 기초선거에서 녹색당이 7%대의 지지를 받으며 세력을 확장했다.

유럽 정치권에 ‘녹색 돌풍’이 부는 반면 반(反)난민·민족주의를 앞세운 극우정당의 약진은 주춤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극우 성향의 자유당은 의석 수가 32석에 그쳐 지난 총선에 비해 19석이나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5월 자유당 대표였던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전 부총리가 2년 전 스페인 이비자섬에서 한 러시아 재벌의 조카에게 정부 사업권을 대가로 재정 후원을 요구하고 정치자금법 규정을 피할 방법을 제안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부패 스캔들’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8월 극우정당 동맹 소속의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가 연정에서 밀려나 ‘극우 포퓰리즘’ 연정이 1년2개월 만에 막을 내린 바 있다.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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