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이춘재(56)가 모방범죄로 밝혀져 범인까지 검거됐던 화성 8차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의 주장이 맞는다면 경찰이 당시 엉뚱한 사람을 처벌한 것이어서 부실수사 논란이 불거질 수 있고 거짓진술이라면 열네 차례의 살인과 30여차례의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기존 자백의 신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어떻게든 논란이 예상된다.
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24∼27일 부산교도소에서 이뤄진 이씨에 대한 4∼7차 대면조사에서 이씨는 8차 사건을 포함한 10건의 화성 사건과 다른 4건까지 모두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당초 언론들은 경찰의 확인을 토대로 지난 1일 이씨가 10건의 화성 사건 중 모방범죄로 밝혀진 8차를 제외한 9건과 다른 5건 등 14건을 자백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은 이와 다르게 진술한 셈이다. 당시 경찰은 보도가 나온 이튿날인 2일 브리핑을 열고 중간 수사 과정을 밝혔지만 언론 보도를 바로잡지 않았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당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주택에서 박모(13)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듬해 윤모(22)씨가 범인으로 검거돼 처벌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씨가 모방범죄로 규정된 이 사건마저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면서 경찰은 이씨 자백의 신빙성을 검증하고 있다. 아무리 과거 자신의 범죄행각을 털어놓는다 하더라도 이미 범인이 잡혀 처벌까지 된 사건을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씨가 경찰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수 싸움’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모방범죄로 밝혀진 8차의 진범을 이미 처벌했는데 이제 와서 1~10차를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하면 경찰이 당시에 엉뚱한 사람을 잡은 꼴이 된다”며 “경찰에 혼란을 주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살인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하면 지금까지의 경찰 수사 과정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경찰은 당시 증거와 관계자 진술 자료 등을 확보해 대조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훈·김지영기자 hoon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