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는 유럽에서 무신론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가톨릭의 비중은 10%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프라하의 아기 예수 성당을 비롯해 세들레츠 해골성당 등 유명한 가톨릭 문화유적지를 품고 있다. 아기 예수와 해골이라는 각각의 ‘테마’를 가졌다는 점이 다른 동유럽 국가의 성당들과는 다른 점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동유럽 가톨릭 문화유산 순례단이 체코 중부 쿠트나호라의 세들레츠 해골성당을 찾았다. 서울 연남동을 연상케 하는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조금만 지나면 이름만으로는 무시무시할 것 같은 세들레츠 해골성당이 있다. 막상 성당에 들어서면 마치 애니메이션 ‘코코’ 혹은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의 악몽’ 등을 떠올리게 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 펼쳐진다. 해골은 물론 사람의 뼈를 이용해 만든 기괴한 샹들리에와 장식을 통해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속수무책으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영원한 삶을 믿고 추구하는 이들의 절실한 모습 말이다. 성당을 이렇게 꾸민 데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문구가 작용했다.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희망이 담겼다.
해골성당은 1142년 세워진 보헤미아 최초의 시토회 수도원 건물의 일부다. 이곳에 묻힌 사람들의 뼈로 성당을 장식했다. 유해는 적게는 4만구, 많게는 7만구에 달한다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이후 수도원은 1812년에 담배 공장으로, 현재는 담배 회사인 필립모리스 체코 본사로 사용된다. 나머지 성당과 지하 납골당이 그대로 보존됐다.
로맨틱한 감성을 자극하는 프라하가 마지막 순례지다. 영화와 드라마의 인기로 한국인에게 프라하는 가톨릭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공간이기보다는 ‘상상화된 로맨스’의 공간일 것이다. 순례단은 프라하의 구도심에 위치한 일명 ‘아기 예수 성당’으로 불리는 승리의 성모 성당을 찾았다. 아기 예수 조각상이 모셔진 곳이자 수많은 신자를 비롯해 관광객이 찾는 프라하의 명소다. 이 성당은 1613년 후스교회로 지어졌다가 30년전쟁 과정에서 가톨릭 수도회인 가르멜회 관할로 이전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아기 예수상뿐 아니라 당시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들이 검은 피부의 인도 출신이라는 것이다. 아마존 만큼은 아니지만 유럽에서도 사제가 부족해 아시아에서 영입하고 있다는 게 주교회의 측의 설명이다.
성당 안 오른쪽 중앙제대에 있는 아기 예수 조각상은 키 45㎝의 목각상이다. 4∼5세가량의 어린이처럼 보인다. 긴 옷에 맨발 차림이고 표면은 밀랍으로 코팅 처리됐다. 16세기 스페인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승리의 성모 성당의 파벨 폴라 주임 신부는 “1556년 스페인 공작 가문의 마리아 만리케츠가 보헤미아 귀족과 결혼하며 아기 예수상을 가져왔는데 그는 딸 폴리세나가 혼인할 때 이를 선물로 준 것으로 전해진다”며 “이후 폴리세나는 아기 예수상을 가르멜 수도원에 선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기 예수상을 두고 예수님의 순수함을 대표하는 조각상이라고 했고 예수님이 잘못하는 이들을 심판하는 것만 아니라 순수하고 인간적이었던 것을 보여준다는 점을 강조하셨다”며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아기 예수상을 보러 왔다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순례의 이유는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1655년 프라하 대교구장 주례로 대관식이 거행되고 조각상을 향해 경배하는 신자들이 늘자 아기 예수는 현재 위치인 성당 내 오른쪽 중앙제단 위에 놓이게 됐다. 또 20세기 들어 아기 예수상의 존재는 전 세계에 알려진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인들을 통해 남미 등을 비롯해 한국에도 전해졌다. 성모 성당 한쪽에 마련된 박물관에는 많은 나라의 가톨릭 교구에서 아기 예수상에 봉헌한 옷들이 진열됐다. 한국 천주교도 2011년 한복을 봉헌했다. 한복은 멕시코 교구에서 봉헌한 전통의상과 함께 전시됐다.
/글·사진(프라하)=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