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정국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겹악재’가 터졌다. 쿠르드족이 장악한 시리아 북부에서 터키가 군사작전을 개시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묵인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슬람국가(IS) 격퇴에 도움을 준 쿠르드를 ‘버렸다’는 여야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의 군사작전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탄핵 조사로 흔들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미 백악관은 전날 “터키가 오래 준비한 시리아 북부 군사작전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테퍼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미군은 그 작전에 지원도, 개입도 하지 않으며 인접 지역에 남아 있지도 않겠다”며 사실상 터키군의 공습에 동의한다는 뜻을 드러냈다. 미군은 이날 즉시 시리아 북동부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트위터를 통해 “이제 말도 안 되는 끝없는 전쟁에서 벗어나 우리 군인들을 집으로 데려올 때”라며 철군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또 다른 트윗에서는 “나는 우리의 위대한 군이 미국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경찰 노릇을 하는 터무니없는 전쟁에서 빠져나오게 하겠다는 것을 토대로 당선됐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쿠르드족 보호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갔으며 세계 분쟁에 개입해 이들의 경찰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고립주의’ 공약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미군 철군 소식에 약 5년간 미군과 함께 IS 격퇴전에서 싸워온 쿠르드족은 토사구팽 처지가 됐다. 터키는 쿠르드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를 자국의 분리주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분파 테러조직이자 자국의 안보 위협으로 보지만, 쿠르드는 그동안 시리아 북부에 배치된 미군 1,000여명의 보호 아래 터키의 군사적 위협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리아는 이번 미군 철수가 마무리되는 대로 유프라테스강을 넘어 시리아 북동부로 진격해 터키와 국경 사이에 ‘시리아 안전지대’를 설치하고 YPG를 몰아낼 계획이다. 미국과 터키는 지난 1월 쿠르드족 보호를 위해 안전지대 설치에 동의했지만 규모와 관리주체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터키군의 군사작전이 임박한 상황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까지 비판을 쏟아냈다. 공화당 소속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시리아에서의 황급한 철수는 오직 러시아와 이란,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만 이롭게 할 것”이라며 “IS와 다른 테러집단이 재집결할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시리아 철군은) 시리아를 혼돈으로 밀어 넣고 IS를 대담하게 만드는, ‘진행 중인 재앙’”이라며 “쿠르드를 포기하면 미국의 명예에 오점이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후폭풍이 거세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 지지가 아니라는 뜻을 밝히며 한발 물러섰다. 그는 터키를 겨냥해 “도를 넘는 것으로 간주되면 터키 경제를 완전하게 파괴하고 말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국방부도 “군대를 재배치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시리아에서의 미군 철수는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의 공격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 탄핵 조사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미 하원은 이날 국방부와 백악관 예산관리국에 소환장을 보내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보류 관련 문서를 15일까지 넘겨줄 것을 지시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보류하기로 한 백악관의 결정에 숨겨진 배경을 조사하는 데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소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하원 탄핵 조사를 방해한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CNBC는 7월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통화 이전에 양국 정상의 최측근들이 워싱턴DC에 위치한 트럼프인터내셔널호텔에서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는 2016년 미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캠프 고문 출신이자 보건후생장관을 맡았던 마이크 루비노와 숀 스파이서 전 백악관 대변인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지만 이들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 관련 언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