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는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주요 소재에 대한 국산화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일부 반도체 생산 라인에 국산 액체불화수소(식각액)를 투입했으며 SK하이닉스도 이달 초부터 국내 업체의 제품을 반도체 라인에 투입하고 있다. 액체불화수소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깎고 불순물을 없애는 데 쓰이는 핵심 소재로 일본의 규제 이후 수출 허용이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솔브레인에서, SK하이닉스는 램테크놀로지로부터 각각 불화수소를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초미세 식각 공정에 필요한 고순도 기체불화수소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EUV 공정에 필요한 포토레지스트 등은 기술 난도가 높아 여전히 일본 업체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체보다 공정 난도가 낮은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국내 중소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관련 소재 국산화에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최근 국산화 테스트를 거친 불화수소를 생산 라인에 투입하며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불화수소는 디스플레이 패널의 결함층 등을 제거하고 각종 분진과 같은 입자를 제거하는 용도로 쓰인다.
일본 업체들은 한국의 이 같은 발 빠른 대응에 당황하면서도 공급선을 이어나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한 중견 전선 업체 임원은 “최근 일본의 스미토모전기공업을 직접 찾아갔는데 일본 기업도 거래선이 끊어질까 노심초사하더라”며 “그날 만난 자리에서 원자재 6개월치를 확보했고 만약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가 있어도 해외 법인으로부터 물량을 빼주겠다는 확약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래도 못 미더워 현재 유럽 업체 등 다른 공급선을 계속 알아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같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열풍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대기업들이 국산 품목을 사줘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 때문에 자칫 경쟁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소재 채택을 강요받을 수 있어서다. 재계의 한 임원은 “국내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전속 거래관계를 요구하는 대기업의 서플라이체인에 의존하다 보니 대기업 납품 자체가 족쇄가 되기도 한다”며 “정부의 지원이 극일에 초점이 맞춰져 솔직히 이번 사태 해결 이후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양철민·이상훈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