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연월일]가난·장애...극한서 빛나는 인간의 위대함

■옌롄커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태고 이래 최악의 가뭄, 셴 할아버지가 사람들이 모두 떠난 마을을 눈먼 개와 함께 지키고 있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만 마을을 통틀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씨가 말랐다. 셴 할아버지는 도망치기보다 그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한다.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 아래 옥수수를 심기 위해 노력하고, 쥐를 잡아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노인과 눈먼 개가 마주한 현실은 고난 그 자체지만 둘은 끝까지 함께 한다.

오랫동안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혀온 중국 작가 옌롄커의 소설 ‘연월일’에는 극한 상황과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 존재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신간 ‘연월일’은 옌롄커가 지금까지 발표한 70여 편의 중·단편소설 중 최고의 작품 네 편을 직접 골라 한국에 최초로 선보이는 것이다.


옌롄커의 대표작들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 ‘사서’ 등은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중국 내에서 출간 즉시 전량 회수되거나 판매·홍보가 금지됐다. 출판사들도 출간을 거절해 ‘중국에서 가장 쟁의가 많은 작가’로 불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옌렌커는 현재 중국에서 평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으며 전 세계에서도 주목하는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평가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를 ‘중국 최고의 풍자소설가. 현대 중국의 어두운 역사에 색다른 유머와 초현실적 이미지를 배치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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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롄커는 인간의 고통과 절망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적극적으로 묘사하는 작가다. 작품집의 표제작 ‘연월일’을 비롯해 ‘골수’ ‘천궁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에도 지독한 가뭄과 굶주림·장애·가난 등 극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인간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골수’에는 간질을 앓고 있는 네 명의 자녀를 결혼시키고 이들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불사하는 어머니의 투쟁기를 담아냈다. 소설에서는 죽은 인물이 살아 있는 것처럼 다시 등장해 대화를 나누거나 귀신이 미리 일을 알려주는 등 초현실적인 설정이 눈에 띈다. 이것이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보다는 마치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옌롄커의 소설은 복잡한 서사와 스토리텔링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가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현실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다양한 형태의 절망과 고통과 목도하게 된다. 또 다른 특징은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수사다. 옥수수 씨앗 하나, 잎 한 줄기, 빗물 한 방울에 담긴 생명의 원리와 인간의 한계를 리듬감 있는 언어로 재현한다. 1만6,000원.


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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