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퇴근용으로 전동킥보드를 장만한 직장인 황광균(39·서울 마포구)씨. 그는 며칠 전 킥보드를 타고 가다 길거리에서 여럿에게 핀잔을 들었다. 차도를 달리니 지나가던 택시기사가 창문을 열고 “위험하니 안쪽(인도)으로 들어가라”고 소리를 쳤다. 이에 인도에서 주행했더니 길을 지나던 중년남성이 “아이들을 치면 어쩌려고 위험하게 이런 곳에서 달리느냐”고 꾸중하듯 말했다.
몇 년 사이 전동킥보드 사용자가 급격히 늘었지만 마냥 편하게 타고 다닐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관련 안전법규가 미비해 교통사고 위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최근에는 전동킥보드 충전 중 화재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동킥보드 소유자는 주행 중에는 교통사고, 배터리 충전 중에는 화재 발생 불안감 등을 안고 있어야 하는 실정이다.
11일 삼성화재 부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삼성화재에 접수된 전동킥보드 교통사고는 총 488건으로 2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중상해를 입었다.
전동킥보드로 인한 화재도 증가 추세다.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달 12일 광주 광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전동킥보드 충전 중에 불이 나 50대 부부가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에 앞선 6월12일에는 대구 중구의 한 고시원에서 전동킥보드 충전 중 과열로 화재가 발생해 고시원 대부분이 전소됐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9월까지 전동킥보드에 의한 화재는 17건, 사망자는 2명이 발생했다. 화재 원인은 전기적 요인 14건(82.4%), 교통사고 1건(5.9%), 미상 2건(11.8%)이었다. 전기적인 요인은 대부분 ‘충전 중’ 과열 등으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동킥보드가 대중화된 지 몇 년 됐지만 정부는 이제야 국토교통부와 행정안전부·경찰청 등과 함께 안전 관련 규정을 만든다며 논의를 시작해 뒷북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아직도 어느 부처가 전동킥보드 안전규정을 만들고 관리할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법의 적용을 아예 안 받는 것은 아니다. 전동킥보드는 현재 도로교통법을 적용받고 있으며 2륜차(오토바이)의 일종인 원동기 장치로 분류된다. 따라서 인도나 자전거도로로 주행할 수 없다. 결국 자동차도로로 주행해야 하지만 4륜·2륜 자동차와 함께 도로를 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행법상 원동기 또는 2종 이상 자동차운전면허를 소지해야 전동킥보드를 운행할 수 있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용자들이 다수다. 또 운행 시 안전모도 착용해야 하지만 대부분 이를 간과하고 원동기 안전모 미착용 단속현장에서 전동킥보드는 거의 제외된 상태다.
한 판매업자는 “전동킥보드는 2016년쯤 대중화되면서 오토바이·자전거와는 다른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떠올랐다”며 “전동킥보드에 도로교통법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만큼 새로운 규정을 만들고 정부 차원에서 사용자에 대한 교육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시민들의 공분을 샀던 서울 ‘한남대교 킥라니’ 사건도 미흡한 제도로 인한 예고된 사고라는 지적이다. 킥라니는 고라니처럼 불쑥 튀어나와 다른 운전자를 위협하는 전동킥보드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8월 전동킥보드 한 대가 한남대교 왕복 12차선 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하다 사고를 내고 도주했다. 전동킥보드 운전자는 정상주행하던 오토바이와 부딪힌 후 킥보드를 버리고 중앙분리대를 넘어 도망쳤고 오토바이 운전자는 팔과 손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전동킥보드 운전자를 찾아낸 경찰은 뺑소니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당시 교통 전문가들과 시민들은 전동킥보드에 대한 마땅한 안전대책도, 관련 교육도 없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고라고 지적했다.
전동킥보드의 경우 보험 가입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공유 업체 차원의 퍼스널 모빌리티 보험(PM보험)은 활성화됐지만 개별 가입 보험은 문턱이 높아 가입률 자체가 미미하다. 전동킥보드는 자동차처럼 등록이 의무화돼 있지 않아 보험 대상 목적물 특정이 어렵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보험사는 전동킥보드 판매사와 제휴를 맺고 고유번호가 확인되는 모델에 한해 전용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보험사와 제휴를 맺지 않은 판매사에서 전동킥보드를 구입할 경우 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또 현재 나와 있는 개인 대상 PM보험은 보험료 부담을 낮추기 위해 자기신체손해나 자차손해에 대한 보상이 거의 없는 배상책임보험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보상한도가 약 1,000만~2,000만원 수준이다. 이 때문에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사고 피해 규모가 클 경우 킥보드 운전자가 사고처리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독일이나 일본처럼 전동킥보드도 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황현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사고 책임과 피해자 보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지 않으면 앞으로 급성장하는 이동수단에 대한 신뢰도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수 없다”며 “책임법제와 보험 제도를 적기에 마련해 모빌리티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정욱·서은영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