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100% 안전'은 없다…세계 최고 기술 美로켓도 이상기후에 폭발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9> 챌린저호 폭발 사고  

美로켓, 초강대국 기술력 자랑 불구

예상 못한 추위로 발사 73초 후 폭발

차·기차·엘리베이터 등 현대 기술

갈수록 복잡해지며 위험성도 상존

오작동에도 치명적이지 않은 설계

인간을 위한 엔지니어링의 첫걸음

미국 플로리다에서 발사된 챌린저호가 73초 만에 폭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유튜브 캡처미국 플로리다에서 발사된 챌린저호가 73초 만에 폭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유튜브 캡처



케이프커내버럴은 미국 플로리다주 동해안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이다. 플로리다 동해안은 큰 굴곡 없이 매끈하게 이어지다가 이 부근에서 살짝 튀어나와 완만한 곶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후 신대륙을 찾은 유럽 탐험가들이 조난 사고를 겪었을 때 해류에 밀려 이 지역에 당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6세기 스페인 탐험가들은 주변에 갈대와 사탕수수가 많다고 해서 이곳을 ‘카냐베랄곶(Cabo Canaveral)’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의 케이프커내버럴이라는 지명으로 정착했다.

비교적 한산했던 이 지역이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지난 1940년대 말부터 미국 연방정부는 케이프커내버럴에 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했다. 1950년에 V-2 로켓이 발사됐고 1959년에는 타이탄 대륙간탄도탄 시험이 이뤄졌다. 이후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이 가속화하자 미국 정부는 1958년에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우주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후 케이프커내버럴은 나사의 공식 발사장이 됐다. 비교적 적도에서 가까워 우주 발사체를 쏘아 올리는 데 유리했고 동쪽으로 발사하면 바로 대서양 상공이라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 착륙을 위한 예비임무였던 머큐리, 제미니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열일곱 차례에 걸친 아폴로 프로그램의 발사까지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수십 차례의 발사를 거치면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인명사고가 없었던 것은 당시 초강대국 미국의 기술력을 방증하는 지표였다.


우주 발사체를 비밀리에 쏘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케이프커내버럴의 케네디우주센터는 아예 관광객들이 발사를 참관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놓았다. 사전에 고지된 발사 일정에 맞춰 방문자 구역으로 가면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 장면을 볼 수 있다. 지금도 케네디우주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다가오는 로켓 발사 참관을 신청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달에는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 스타링크 위성 발사가 예정돼 있다. 아폴로 시절부터 정착된 문화다. 최근에는 상업적 우주개발이 본격화하기 시작했지만 국민의 세금으로만 운영되던 시절 나사에는 대중적 지지가 더욱 중요했다. 입장권을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발사를 지켜보며 우주개발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지난 1986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챌린저호가 발사되고 있다. /뉴욕타임스 유튜브 캡처지난 1986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챌린저호가 발사되고 있다. /뉴욕타임스 유튜브 캡처


1986년 1월28일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오전11시30분께로 예고된 발사시각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속속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다만 그날 아침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낮았다. 플로리다 지역의 1월 평균기온이 최고 섭씨 20~25도, 최저 7~12도인 데 반해 당일 오전에는 영하로 떨어졌다. 모여든 관광객들은 예상치 못한 추위에 떨며 발사가 연기되지나 않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각이 되자 장내 스피커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5…4…3…2…발사!”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엔진이 켜지고 발사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발사 순간이 되자 40m 가까운 길이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엔진의 불꽃이 거대한 구조물을 공중으로 서서히 밀어올렸다. 일곱 명의 우주인을 태운 우주왕복선은 계획대로 발사됐다.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모두 챌린저호가 목적지인 국제 우주정거장까지 순항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불과 73초 후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하늘로 날아오른 챌린저호의 오른쪽 고체 로켓 부스터(SRB)에서 불꽃이 튀더니 순식간에 폭발이 일어났다. 다량의 연료로 불꽃이 옮겨붙자 우주왕복선 전체가 폭발하며 공중에 기묘한 모양의 연기기둥을 남겼다. 폭발의 잔해는 대서양의 넓은 지역으로 후두두 떨어졌다. 이 모든 장면은 텔레비전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필자 역시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뉴스에서 이 장면을 반복해서 틀어주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튿날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챌린저호 폭발 사고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두 갈래의 흰 연기기둥이 갈라지며 추락하는 챌린저호의 모습은 이렇게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됐다.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즉시 대통령 직속 위원회(일명 로저스위원회)를 구성해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5개월에 걸친 활동 끝에 로저스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요점은 SRB의 연결 부위를 밀폐하는 ‘오링(O-ring)’이라는 부품이 저온 상태에서 뻣뻣한 상태로 경화(硬化)돼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그렇게 생겨난 미세한 틈으로 부스터 내부로부터 고온고압의 연료가 새어나오면서 폭발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밝혀졌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나사가 발사 결정을 내렸을 때 당일의 이상저온현상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은 관료주의에 빠진 나사 매니저들이 기술진의 경고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발사를 강행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챌린저호의 SRB 설계를 맡았던 엔지니어 로저 보졸리(1938~2012)는 참사 이후 평생을 바쳐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발사 하루 전인 1월 27일 밤 나사 책임자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해 예상되는 낮은 기온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보졸리를 비롯한 기술진은 과거에도 저온 상태에서 오링이 파손된 경우가 있었다는 점을 들어 발사를 미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챌린저호 발사는 이미 두 차례나 연기된 바 있었고 레이건 대통령은 발사 당일로 예정된 의회 연두교서에서 성공적인 발사를 언급하기로 돼 있었다. (챌린저호 폭발로 대통령 연설은 그다음 주인 2월4일로 연기됐다.) 나사 매니저들은 기술진이 제시한 근거가 발사를 재차 연기할 정도의 설득력을 가진다고 보지 않았다.

하지만 챌린저호 사고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해온 사회학자 다이앤 본은 위와 같이 선악의 구분이 명확한 설명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나사 매니저들이 단순히 경제적·정치적 압박 때문에 오링의 위험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발사 전날 소집된 회의에서 매니저들과 엔지니어들은 당시 확보하고 있었던 모든 데이터에 근거해 토론을 벌였고 그 결과 발사를 연기할 정도로 명확한 이유가 없다는 데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모든 복잡한 기술 시스템은 항상 어느 정도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편안한 마음으로 이용하는 자동차·기차·엘리베이터 등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약간의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결국 발사 전날 밤의 합의는 챌린저호가 가진 위험을 ‘수용할 만하다’고 받아들이자는 합의였던 셈이다. 챌린저호 폭발 사고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도 100% 확실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매일 각종 테크놀로지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가끔씩 오작동을 일으킨다. 컴퓨터가 다운돼 열심히 작업한 원고가 날아가기도 하고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 힘든 다리를 이끌고 계단을 터벅터벅 오르기도 한다. 엔지니어들이 모든 경우에 100% 확실한 테크놀로지를 만들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그것이 오작동을 일으키더라도 누군가에게 치명적이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중복설계와 백업 시스템을 두고 사용자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더라도 목숨의 위협까지는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 인간을 위한 엔지니어링이란 여기에서 시작된다.

권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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