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경전철의 전 민간투자사업자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투자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에서 승소했다.
의정부지법 민사합의12부(김경희 부장판사)는 16일 의정부경전철 전 사업자들이 의정부시를 상대로 낸 약정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의정부시가 의정부경전철 전 사업자들에게 청구액 모두인 1,153억원과 연 12∼15%의 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또 소송비용 모두를 피고인 의정부시가 부담하라고 했다.
이는 민간투자사업 도입 후 적자로 파산한 민간사업자가 사업을 발주한 주무관청을 상대로 한 투자금 반환 소송에서 처음으로 이긴 사례다. 지난 5월에는 민자사업자인 신분당선주식회사가 ‘낮은 운임을 책정해 손실을 봤다’며 정부를 상대로 낸 손실보상금 청구소송에서 대법원 최종 승소했다. 민자사업에서 정부의 손실보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1995년에 도입된 민자사업은 도로와 철도 등 공공사업에 대한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민간기업의 자본을 끌어들인 대가로 일정 기간 수익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민자사업 손실에 정부와 지자체에 책임을 묻는 판결이 잇따르면서 운영의 어려움 등으로 법적 분쟁을 겪는 다른 민간투자 사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당초 의도와 달리 정부와 지자체 재정에 부담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의정부경전철은 총사업비 5,470억원을 의정부시와 사업자가 각각 48%, 52% 분담해 2012년 7월 개통했다. 하지만 컨소시엄인 의정부경전철 전 사업자는 3,600억원대의 적자가 쌓이면서 2017년 5월 파산했다. 양측 간 의정부 경전철 협약은 자동 해지됐고 지금은 새 사업자가 운영 중이다.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출자사와 대주단·파산관재인 등은 투자금의 일부인 2,200억원을 반환해달라고 의정부시에 요구했다. 하지만 의정부시가 거부하자 같은 해 8월 투자금 일부를 돌려달라는 내용의 ‘약정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에는 일단 1,153억원을 청구했지만 승소 결과에 따라 나머지 돈도 요구할 수 있다.
재판은 지난해 3월 시작됐다. 의정부시와 사업자 간 협약에는 ‘협약 해지 시 투자금 일부를 사업자에게 돌려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의정부시는 “사업자가 ‘도산법’에 따라 파산, 스스로 사업을 포기해 협약이 해지된 만큼 협약에서 정한 지급금을 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업자 측은 “도산법에 의한 파산이더라도 의정부시와의 유일한 협약이기 때문에 이에 준해 해지금을 줘야 한다”고 맞섰다. 1년여의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은 사업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의정부시는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할 예정이다.
“수익 적은데 위험 떠넘겨”…‘만성적자’ 민자사업 줄소송 예고
신분당선 손실 보전 소송서 승소
인천대교 사업도 ICC 중재중
민자, 재정부담 회피 수단 지적 속
방만경영 실패 정부 부담 우려도
“적정 수익 보장 정책신뢰 높여야”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재정사업을 대체하면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했던 민간투자사업(민자사업)이 각종 소송전으로 흔들리고 있다. 민간 사업자들은 낮은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위험부담만 늘어나는 사업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며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줄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민간 사업자들이 방만한 경영에 따른 손실을 떠넘기려 한다며 불만이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구조적 개선 없이 사업별 임기응변식 대응을 한 탓에 각종 부작용이 촉발됐다며 적정 수입 보장, 정책 신뢰도 제고 등을 주문하고 있다.
◇‘만성적자’ 민자 사업자들 줄소송 나서나= 16일 의정부지법 민사합의12부(김경희 부장판사)가 의정부경전철 사업 약정금 청구 소송에서 의정부경전철 전 사업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번 소송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민자사업자들도 법률적 검토에 나서기 시작했다.
앞서 지난 5월에는 신분당선 사업자인 신분당선 주식회사가 정부에 손실보상금 청구 소송을 걸어 승소하기도 했다. 2011년 개통 때 정부가 연 8%의 수익률을 보장했는데, 기본운임을 여기에 맞춰 계산한 1,900원보다 낮은 1,600원으로 정해 수익성이 크게 나빠졌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사업자가 요구한 손실보상금 136억원 중 67억 3,000만원의 보상 책임을 인정했다. 법원에서 민자사업자의 손을 들어주는 사례가 늘면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우이경전철 사업자 등도 소송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성 저하에 따른 손실 저하를 보상해 달라는 요구도 늘고 있다. 소사~원시선 복선전철 사업자인 이레일은 대한상사중재원에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 비용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중재 요청을 냈다. 인천대교를 민자로 운영하는 인천대교 주식회사는 인근 제3연륙교 건설에 따른 통행 수익 감소분을 보전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 건은 현재 국제상업회의소(ICC)가 중재를 진행 중이다.
◇민간 “위험 부담만 떠넘겨” 불만 = 민간사업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정부가 낮은 사업성을 보전해주지 않으면서 높은 위험 부담만 떠안기고 있다는 데 있다. 민간투자는 1994년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자본유치촉진법’ 도입 이후 수 백 건 넘는 사업이 추진되면서 SOC 사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주로 교통사업 등에서 활용돼 온 민자사업은 초기에는 최소운영수입보장(MRG)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사업 진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재정사업보다 높은 요금, 사업자(SPC) 파산 사례 등으로 사회적 비판이 커지자 2009년 MRG 조항을 폐지했다.
교통사업의 경우 수십 년 간의 수요를 예측해 운영해야 하지만 장기 교통 수요 추정 결과는 정확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재정사업은 이에 따른 위험을 주무관청이 지지만 민자사업에서는 사업자가 떠안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민자사업자는 운임 등을 올려 받아 사업성을 최대한 높이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공공성 측면에서 제한을 걸다 보니 계속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대형건설사 임원은 “수익성은 보장이 전혀 되지 않고, 수요 추정조차 민간이 아닌 공공이 맡고 있다”며 “정부가 재정사업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자사업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자사업으로 지역 SOC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들은 법원 판결이 민간 사업자들이 방만한 경영의 실패를 주무관청에 떠넘기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민자사업의 활용 방식을 구조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책 과제’ 보고서를 통해 “민자사업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나 검토 없이 특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임기응변식 제도가 만들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민간투자시장 활성화를 위해 민자사업의 적정 수익을 확보해주고 정부가 민간투자시장의 안정적 운영을 도모한다는 정책적 신뢰감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합리적인 민자사업 방식 논의의 핵심은 사업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민간과 주무관청이 어떻게 합리적으로 분담할 것이냐의 문제”라고 언급했다./진동영기자 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