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시대에도 서민들에게 은행 대출의 문턱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민들이 주된 대상인 중금리(연 6~10% 금리적용) 대출의 은행 취급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 은행들이 서민금융지원에 인색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돈을 풀어 시중에 부동자금은 넘치지만 은행이 각종 규제와 수익성 관리에 신경을 쓰면서 막상 서민들은 돈을 빌리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20일 국회 정무위원장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받은 주요 시중은행 중금리 현황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은행의 올해 1·4분기 중금리 가계대출은 총 792억원으로 전체 가계대출의 0.98%에 불과했다. 금액별로 신한 321억원(0.30%), 우리 266억원(0.25%), 국민 98억원(0.09%), 하나 85억원(0.32%), 농협 22억원(0.02%)의 순으로 5대 시중은행 가운데 1%를 넘는 경우는 없었다.
지난해에도 중금리 대출 비중이 전체 가계대출의 1%를 넘은 은행은 하나은행이 1,639억원(1.47%)으로 유일했다. 신한은 2,158억원(0.56%), 우리 1,277억원(0.29%), 국민 592억원(0.11%), 농협 197억원(0.06%) 순이었다. 정부의 서민금융 지원책에 따라 지난해 중금리 대출 비중이 전년도에 비해 소폭 상승하는 가운데에도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0.05%포인트, 0.01%포인트씩 하락했다. 특히 한국은행이 지난 7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후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가계신용대출 중 금리 연 6~10% 구간의 취급비중은 1월보다 8.5%포인트 하락한 5.9%로 집계됐다. 정부와 정치권의 서민금융지원을 강화하라는 주문이 무색한 수치다.
은행권도 답답한 처지다. 한국은행이 지난주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치인 1.25%로 낮추면서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이 평균 5~6bp하락할 것으로 증권가는 전망하고 있다. 금리 인하에 수익성은 갈수록 떨어지는데 연체와 부실 관리 등에 비용이 큰 중금리 대출을 늘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중금리 대출뿐만 아니라 내년 1월부터 새로 도입될 은행 예대율 규제 탓에 가계대출의 전체 문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내년부터 도입되는 새 예대율 규제의 핵심은 가계대출은 가중치 15%를 주고 기업대출은 15%를 낮추는 것인데 은행이 가계대출을 늘리는 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시중은행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에 치중해 기존 가계대출 보유분만으로도 새 예대율 규제를 맞추기가 빠듯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금융권에서 밀린 대출 신청자들이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2금융권으로 몰려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저축은행에서 가계신용대출을 받은 사람은 총 115만5,000명. 이 중 연 20% 이상의 금리로 대출을 받은 사람은 63.2%(73만명)에 달했다. 기업·가계 전체 중금리 대출도 빠르게 제2금융권으로 이동해 한 분기 동안 5.04%포인트 증가하는 등 제2금융권으로의 쏠림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