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비트루비안 맨

“깊은 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자크 소니에르 관장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시체는 양 팔과 다리를 펼친 채 누워 있고 주변에는 ‘P.S.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는 문구 등 알 수 없는 암호 흔적들이 가득하다.” 7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다빈치코드’의 시작 부분 중 한 장면이다. 시체가 누운 모양은 세계적인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과 닮았다. 정사각형과 원 안에 인체가 팔다리를 펼친 채 겹쳐진 드로잉 그림이다. 이 그림 속 인체의 주요 부분이 황금비율(1대1.168)에 따라 그려졌다는 데 착안해 영화 속에서는 황금비를 비밀금고를 여는 암호로 설정한 것이다.


비트루비안 맨은 모나리자·최후의만찬과 함께 다빈치의 3대 걸작으로 꼽힌다. 다빈치는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궁전 서고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따라 종군한 유명한 로마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저서를 본 후 이 드로잉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비트루비우스의 저서는 오랫동안 잊혔다가 이 무렵 발견됐다. 당시 그리스·로마 문화의 부활을 추구했던 미술인들이 이 저서에 빠져든 것은 당연했다. 비트루비우스는 그의 저서에서 인체는 비례의 모범이며 팔과 다리를 뻗으면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인 정사각형과 원에 딱 맞는다고 서술했다. 다빈치는 인체 속에 완벽한 우주의 질서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고 황금비율을 적용해 인체를 그려냈다. 이를테면 ‘발~배꼽, 배꼽~머리 길이의 비율’ ‘배꼽~무릎, 무릎~발 길이의 비율’ 등이다. 이런 관점은 원근법과 명암법 탄생으로 이어져 근대 서양미술의 근간이 됐다. 황금비는 오각형의 대각선을 연결했을 때 분할되는 비율로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찾아냈다.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비율이라고 해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등 역사 속 유명 건물·조각 작품에 많이 적용됐다고도 한다.

관련기사



한 이탈리아 문화유산보호단체가 비트루비안 맨의 훼손을 우려해 프랑스에 대여하지 못하도록 소송을 냈다가 최종 패소판결을 받았다. 베네치아법원은 가처분 신청은 받아들였지만 본안 소송에서 이를 뒤집었다. 이에 따라 비트루비안 맨은 다빈치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12월14일까지 2개월가량 루브르 박물관에서 특별전시가 가능해졌다. 평소에도 발 디딜 틈이 없는 루브르 박물관이 비트루비안 맨으로 더 붐비게 생겼다. /오현환 논설위원

오현환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