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러 전략폭격기까지 동원, 동·서·남해 KADIZ 휘저어

군용기 6대 동원 3시간 머물러...이례적으로 하루 4차례 침범

7월 경고사격에 무력시위 분석...오늘 합동군사위 합의 힘들듯

러 잠재위협 현실화 우려 속 中과 연합땐 동북아 정세에도 영향

지난 7월 우리 영공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 ‘TU-95’./연합뉴스지난 7월 우리 영공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 ‘TU-95’./연합뉴스



러시아가 조기경보기와 전략폭격기, 전투기 등 6대를 동원해 동해와 남해·서해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4회에 걸쳐 3시간가량 무단 진입, 우리 공군 전투기가 즉각 대응에 나섰다.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무단 진입은 올 들어 16회 발생했으나 호위전투기까지 딸린 폭격기의 비행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A-50 조기경보기 1대, TU-95 폭격기 2대, SU-27 전투기 3대로 구성된 군용기 6대가 차례로 KADIZ에 진입한 이유는 지난 7월23일 KADIZ를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에 대한 우리 공군 전투기의 경고 사격을 의식한 무력시위로 풀이된다. 더욱이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23일 합동군사위원회 개최를 앞둔 상황에서 러시아가 무력시위를 펼친 의도가 주목된다.


합동참모본부는 “러시아 군용기 6대가 (차례로) 22일 오전9시23분 동해 쪽 KADIZ에 진입해 모두 4차례에 걸쳐 동해와 제주도·이어도 부근의 KADIZ에 진입했으며 오후3시13분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공해와 KADIZ를 오간 러시아 군용기들이 KADIZ에 진입한 시간은 모두 합쳐 3시간으로 알려졌다.

합참에 따르면 가장 먼저 들어온 기종은 A-50 조기경보기. 오전9시23분 울릉도 북쪽 KADIZ에 진입해 9시30분 이탈했다가 10시6분에 재진입, 10시13분 완전히 나갔다. 이어 TU-95 전략폭격기 겸 장거리 정찰기 2대와 SU-27 전투기 1대 등 3대가 10시41분 울릉도 북쪽 KADIZ로 들어와 SU-27 전투기는 울릉도 동쪽에서 북상하며 11시9분 KADIZ 외곽으로 나갔다. 그러나 항속거리가 긴 TU-95 전략폭격기는 남하를 계속해 11시10분에 포항 동쪽에서 KADIZ를 빠져나간 후 공해상의 항로를 통해 제주도 방향으로 기수를 틀었다.

KADIZ 이탈 후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으로 비행하다 11시58분께 제주 남쪽에서 KADIZ에 다시 들어온 TU-95 2대는 제주도와 이어도 사이를 지나 서해로 북상하다 12시58분 태안 서쪽에서 KADIZ를 이탈했다. KADIZ 외곽에서 기수를 남쪽으로 돌린 TU-95 2대는 이어도 서쪽에서 KADIZ에 또다시 들어와 역경로를 따라 오후3시13분에 KADIZ를 최종적으로 이탈했다.

최종 이탈 전에는 SU-27 전투기 2대가 새로 나타나 오후2시44분에 울릉도 북쪽에서 KADIZ로 진입, 동해와 남해·서해를 거쳐 다시 남해를 돌아 울릉도 부근 KADIZ를 장거리 비행한 TU-95 전략폭격기와 합류(3시 1분)하는 호위 및 연합 비행도 선보였다.


우리 공군은 F-15K·KF-16 전투기를 출격시켜 경고 방송 등 대응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군용기들이 이날 우리 영공을 침범하지는 않았으나 6대가 장시간 KADIZ에 머문 것은 러시아도 새로운 위협 요인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서해에서 출발해 남해를 지나 동해까지 북상하는 비행경로를 지나는 동안 KADIZ에 무단 진입하는 중국 군용기들과 합세할 경우 한국뿐 아니라 동북아 지역 안보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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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군용기의 이번 무단 진입은 한국과 러시아의 23일 합동군사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발생한 것이어서 양국 간 협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양국 합동군사위원회는 방공식별구역 및 KADIZ 인근 상공을 비행하는 항공기에 대한 비행정보 교환을 위한 핫라인 설치와 이를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시기, 형식 등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한국 국방부는 지난해 8월 러시아 국방부와 두 나라 공군을 연결하는 직통전화 설치에 합의했고 같은 해 11월 직통전화 설치를 위한 MOU 문안 협의를 완료한 바 있다.

이후 진척이 없다가 7월23일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해 양국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하자 러시아 측은 한국 측과 ‘긴급 협력체계’ 구축 필요성을 느끼고 협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양국 합동군사위원회 개최를 코앞에 두고 러시아 군용기가 또 KADIZ에 진입해 러시아 측의 재발 방지와 관련된 협의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러시아 군용기(조기경보기) 1대가 7월23일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두 차례 7분간 침범한 바 있다. 당시 공군 전투기는 즉각 차단 기동에 나섰고 적외선 유도 미사일을 교란하기 위해 발사하는 섬광인 플레어 투하와 경고사격을 했다. 8월8일에도 러시아 군용기가 KADIZ를 무단 진입해 전투기들이 대응 출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경보기가 전황을 파악하고 전투기의 엄호를 받는 전략폭격기가 위협 비행하며 항속거리가 짧은 전투기들이 번갈아 출격해 폭격기 등의 엄호에 나선 것은 무력시위의 일환으로 보인다. 7월23일 한국 공군의 러시아 군용기에 대한 위협 사격을 다시는 허용하지 않으며 동해와 남해·서해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전 국토가 러시아 장거리 폭격기의 작전 반경이라는 점을 강조하겠다는 속내가 읽혀진다.

주목할 대목은 러시아가 한반도 공역에서 폭격기와 전투기를 본격적으로 조합 운용하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열릴 한러 합동군사위원회에서 양국이 서로 만족할 접점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우리 입장에서는 러시아라는 위협이 보다 뚜렷하게 다가온 셈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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