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10차 화성연쇄살인사건 증거물에서 이춘재(56)의 DNA가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가 화성연쇄살인 10건이 모두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상황에서 경찰은 다른 방법으로 이씨 자백의 신빙성을 검증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 수사본부는 24일 언론 브리핑을 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8차와 10차 사건 증거물에서 DNA가 나오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특별하게 남성 유전자가 나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화성살인사건 유력용의자 이씨를 포함해 타인의 DNA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8차는 지난 1988년 9월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가정집에서 여중생 박모(13)양이, 10차는 1991년 4월 화성군 동탄면 반송리의 야산에서 67세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8차 사건은 과거 범인이 검거돼 처벌까지 받았지만 이씨는 8차를 포함해 10건의 화성사건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지난달 자백한 바 있다.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62)씨는 “경찰의 강압 수사 때문에 거짓자백을 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재심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국과수에 8차 사건 당시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토끼풀 등 증거물에 대한 재감정을 의뢰했었다. 또 10차 사건 증거물도 만일을 대비해 재분석을 부탁했다.
반기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 2부장은 “8차 사건 증거물은 이미 당시에도 의미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어서 애초부터 피의자의 DNA가 나올 가능성이 적었다”며 “10차 사건 증거물은 애매한 부분이 있어 몇 차례 정밀분석을 진행했고 최근 피의자의 DNA가 나오지 않았다는 결과를 최종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이씨의 DNA가 증거물에서 나온 사건은 3·4·5·7·9차 사건 등 모두 5건이다. 2차 사건 증거물에 대한 DNA 분석은 현재 진행 중이다.
8차 사건 증거물에 대한 DNA 분석에서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함에 따라 경찰은 과거 이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들의 진술과 당시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진범 논란이 불거진 이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경찰 측은 “범인으로 지목돼 처벌받은 윤씨에게 당시 수사관들이 가혹 행위를 했는지 들여다볼 것”이라며 “이춘재가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한 자백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있는지 계속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8차 사건의 진범으로 처벌받은 윤씨 측 변호인에게 당시 신문조서와 구속영장 등 서류 9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윤씨 측 변호인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조치다. 경찰 측은 “윤씨의 권리구제 필요성을 검토한 결과”라며 “빠른 시일 내 공개 문건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