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에서 정당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임무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국민을 대표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국민이 과연 다수의 국민인가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야 할 것 없이 국민의 뜻을 빙자해 당과 당 지도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형적인 과두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로베르트 미헬스는 1800년 전후 ‘과두제의 철칙’을 주장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생활양식이 지배적이었고 대중이 성립돼 있지도 않았다. 국민주권의 개념도 완성되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정당들은 명망가정당에 해당됐고 과두제는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대한민국은 국민주권을 근간으로 하는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다. 더욱이 민주화 이후 정당운영은 총재 1인 지배체제에서 최고위원회라는 집단지도체제로 전환되고 당원들이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 상당 부분 참여할 수 있다. 그만큼 정당 운영이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의 행태는 여전히 강경 소수파의 목소리가 더 크고 특정 계파의 이익을 우선하는 적폐를 노정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정치의 몰상식한 진영논리에 매몰된 정당정치 적폐가 정치개혁의 최우선 대상이다.
다행히 정치권 내부에서 이러한 적폐를 개혁하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는 과거 원로 정치인이 단순한 인적 쇄신을 목적으로 상징적인 불출마 선언을 했던 것과는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그가 불출마 선언을 한 이유는 당내 진영논리에 대한 반성의 결과였다. 정치권의 진영논리 반성은 표 의원이 처음은 아니다. 6월 더불어민주당의 제윤경 의원, 자유한국당의 조훈현 의원, 바른미래당의 이상돈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들 역시 불출마 선언 이유로 당내 계파정치와 진영논리, 그리고 일하지 않는 국회를 지적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초선의원이면서 인적 쇄신을 위한 영입인사들이었다는 것이다. 비단 이 네 명의 의원들뿐 아니라 많은 정치인이 의욕을 갖고 국회의원 활동을 하고자 했으나, 당내 계파논리와 다른 정당과의 경쟁에서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이 아닌 진영논리에 매몰된 모습을 보면서 한계와 환멸을 느끼고 정계를 떠난 사례는 더 많을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은 정치의 처음과 끝이며 그 역할은 국민의 다양한 이익을 수렴하고 분화된 국민의 요구를 집중시켜 우선순위를 정책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른 정당과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을 한다. 이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치열한 경쟁은 물론 합리적인 대화와 협상이다. 특정인을 위한 계파정치와 극단적인 진영논리의 정치라는 적폐를 퇴출하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개혁의 최우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