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4년 만에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25일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이 이유 중의 하나로 꼽히지만 지위를 유지하는 대외적 명분이 약하고 당장 농업에 미치는 영향도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단체는 “식량주권을 포기했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미래에 WTO 협상이 전개되는 경우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홍 경제부총리는 “이번 의사결정 과정에서 쌀 등 민감 품목에 대한 별도 협상 권한을 확인하고 개도국 지위 포기가 아닌 미래 협상에 한해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농업 분야에서 개도국 특혜를 인정받아 관세 및 보조금 감축률, 이행 기간 등에서 선진국에 비해 혜택을 누려왔다. 정부는 미래 WTO 협상부터 적용되므로 새로운 협상이 시작돼 타결되기 전까지는 기존에 확보한 특혜는 변동 없이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사실상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것은 한미 간 통상분쟁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다음달 23일 종료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25% 고율관세 등 현안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경제적 발전도가 높은 국가가 WTO 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압박했고 이에 싱가포르·브라질·대만 등이 더 이상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정부는 공익형 직불제 도입 등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민단체들은 제2의 통상압박이 쏟아질 경우 쌀 관세율 인하를 비롯해 관세와 보조금의 대폭 감축과 이에 따른 피해가 예상된다고 우려하고 있다./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