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이인호 무보 사장 "미중일 파고에 118조 기업지원...신남방서 수출 돌파구 모색"

[서경이 만난 사람]

인도·인니·베트남 등 신시장 수출 지원규모 대폭 확대 계획

한일갈등 길어지면 국내업체 일시적 유동성 공급방안 고민

수출 살리는데 기업구분 없어...中企 위한 별도프로그램 추진




“대외 여건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보호무역주의 확대, 글로벌 경제침체 우려 확산 등 기업의 불확실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맞물려 무역보험공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비 올 때 우산을 빼앗기보다는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보다 공격적인 지원을 하려고 합니다.”

이인호(사진) 무역보험공사 사장은 지난 25일 서울 종로 사옥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글로벌 경기가 침체한 상황을 진단하며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미중 무역전쟁을 비롯한 대외변수가 해결되지 않은데다 일본의 수출규제 등 추가 악재까지 겹친 상황이다. 다만 이 사장은 이럴 때일수록 무보가 적극적인 금융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외 여건이 불확실할수록 무보 같은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막중해진다는 의미다. 실제 수출이 10개월 연속 역성장하는 가운데 올해 9월 말까지 무보의 전체 지원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 늘어난 118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 사장은 과감한 지원으로 기업의 일시적 자금난을 해소하는 한편 특정 국가나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 치우친 수출구조 자체를 탈바꿈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수출시장과 품목을 발굴하려면 리스크가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확실한 지원에 나서되 그 안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갈등 피해 복합적, 신남방 속도 내야”=이 사장은 미중 간 갈등이 다층적으로 국내 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이 사장은 “미국과 중국은 우리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핵심시장”이라며 “미국이 관세 등을 부과하면 중국으로 중간재를 수출하는 국내 기업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중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면 우리 경제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며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까지 중국 현지에 진출해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도·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신(新)남방국가’와의 교역을 확대하는 데 무보가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실제 무보의 신남방 지역 등 신시장에 대한 지원 규모는 지난해에만도 43조4,000억원에 이르렀으며 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무보는 지원 규모를 늘리는 동시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내놓고 있다. 주목할 점은 무보가 국내 기업을 직접 지원할 뿐 아니라 현지 수요업체를 통한 우회지원에도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대표적인 사례로 수요업체 자금조달지원 정책을 꼽았다. 이 사장은 “현지 업체 중 국내 기업과 거래를 하고 싶어하면서도 파이낸싱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적잖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참여를 전제로 현지 사업에 금융지원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무보는 3월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와 추진하는 프로젝트와 관련해 국내 기업 참여를 조건으로 무보가 금융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시중은행으로부터 대출을 원활하게 받을 수 있게 무보가 해당 금액에 대해 보증을 서주는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무보가 시중은행 해외영업점에 ‘단기 수출보험 구매자신용’을 지원하면 은행이 이를 담보로 현지 수입처에 대출을 지원해주는 형태다. 이 사장은 “최근 미얀마 진출을 위해 신한은행 등과 관련 업무협약을 맺었고 국민은행과는 베트남 시장 공략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시장 확보와 동시에 수출품목도 다변화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이 사장은 “정부가 전기자동차, 에너지 신산업 등 12대 차세대 주력산업을 선정한 만큼 무보 역시 해당 품목에 대한 보험한도 확대, 중소·중견기업 보험료 할인 등으로 후방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입 지원도 과감히…克日 속도 낼 것”=미중 갈등에 일본 수출규제까지 겹친 상황이지만, 이 사장은 국내 업체의 수입처 다변화를 지원하는 한편 일시적 유동성 문제 해결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무보는 우선 국내 업체에 대한 선급금 지원 보증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제품을 수입하는 경우 제조사에 일정 규모의 선급금을 지급하는데 이를 떼일까 봐 거래를 망설이는 기업들을 돕기 위해서다. 이 사장은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 업체로 수입처를 바꾸려 하지만 첫 거래다 보니 서로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태”라며 “무보가 이를 보장해줌으로써 다변화를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과도 하나둘 쌓이고 있다. 이 사장은 “9월 규제 대상인 불화수소를 수입, 가공하는 서울 소재 한 중소기업에 수입보험 2억원을 지원했다”며 “이 덕분에 대체 공급자를 찾기 어려운 품목 중 하나인 고순도 불화수소를 일본 이외 지역에서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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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조기에 개선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유동성 지원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 사장은 “양국 간 관계가 악화일로로 가면 일부 일본 업체들이 갑자기 거래를 못 하겠다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며 “국내 기업의 자금 압박이 심해질 경우에 대비해 무보가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보는 이외에 현재 이용 중인 보증한도를 감액 없이 연장하고, 보험료도 일부 할인해 수출기업의 자금 부담을 줄이고 있다. 아울러 새롭게 수출계약을 체결한 경우 해당 계약서에 기반해 수출이행 필요 자금에 대한 추가 보증 지원도 가능하게 했다.





◇“수출 살리는 데 대·중기 구분 없어”
=이 사장은 무역보험을 제공할 때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을 굳이 구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대기업 지원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있지만, 대기업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면 중소·중견기업이 성장할 기회도 늘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무보가 대기업에 지원한 무역보험 비중은 전체의 65% 수준으로 무보는 올해도 이 같은 수준을 유지할 계획이다. 이 사장은 “해외시장 초기 진출에 삼성이나 LG처럼 대기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며 “대기업 제품이 팔릴 때 중소기업들에 돌아가는 몫도 적잖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지난해 12월 무보가 삼성엔지니어링·삼성물산 컨소시엄에서 수주한 말레이시아 정유·석유화학 플랜트 건설 프로젝트에 3억8,000만달러 규모의 무역보험을 제공한 사례를 들었다. 무보의 지원 덕에 국내 중소·중견 기자재 기업 100개사는 1,000억원가량의 기자재를 납품할 수 있게 됐다. 대기업에 보험을 제공했지만 그로 인한 과실을 동반 진출한 기업들이 고루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무보는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지원 규모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지난해 수출지원액(149조원) 중 중소기업에만 한해 동안 52조원의 무역보험을 실행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동시에 무보는 중소기업을 위한 별도의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4월에 시작한 수출채권 조기 현금화 보증, 수출계약 기반 보증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수출채권 조기 현금화 보증은 기업들이 외상수출 결제일 이전에 수출채권을 현금화할 수 있도록 무보가 보증하는 제도다.

아울러 무보는 ‘벤더페어’에 해외 건설사 등을 초청해 국내 중소기업들과의 교류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중소업체가 수출하려면 해외 건설업체의 벤더로 등록해야 하는데 중소기업이 글로벌 건설사를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중소·중견 기자재 업체 30개사가 벤더로 등록했으며 이미 수건의 수출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정리=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He is…

△1962년 서울 △1980년 광성고 △1984년 서울대 경제학학사 △1987년 제31회 행정고시 합격 △1999년 하버드대 행정학석사 △2000년 지식경제부 산업기술정책과장·정책기획국장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 창의산업국장 △2015년 7월 산업부 무역투자실장 △2016년 산업부 차관보 △2017년 산업부 차관 △2019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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