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 논리를 내세워 핵 지위를 유지하면서 한미동맹 해체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김태우(69) 전 통일연구원장(건양대 군사학과 교수)은 북한 대남전략의 처음도 끝도 모두 한미동맹 해체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이 신고립주의에 속도를 내는데다 문재인 정부의 좌파 수정주의가 맞물려 이미 한미동맹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나라 핵전략·핵확산 분야 1호 박사인 그를 지난 24일 만나 북핵 폐기에 대한 해법을 들어봤다.
-우리 안보 전반을 평가한다면.
△국민들이 별로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안보상황은 6·25전쟁 이후 가장 나쁘다. 북핵 문제가 악화했고 군사력은 오히려 축소됐으며 외교적으로는 고립됐다. 한미동맹은 상당히 이완됐고 9·19남북군사합의도 문제가 많다. 결정적으로 국민의 안보의식이 대단히 좋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들은 진영논리에 빠져 상대방 얘기는 아예 듣지 않는 등 심하게 분열돼 있다.
-평양공동선언 1년이 지났는데 북핵 폐기는 물 건너간 것 아닌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신년사 때 평화공세로 전환한 후 평화무드가 조성됐지만 북핵 문제는 오히려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10번이나 하며 대외적 위상을 높였고 대내적으로도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했다. 2년 가까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하지 않았지만 나머지는 다 했다. 핵물질을 계속 생산하는 한편 미사일을 11차례나 시험하며 고도화했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실험도 강행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과장한 것이 대북 외교를 실패로 이끌었다는 반성이 나오는데.
△북한이 하겠다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비핵화’로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마치 실제로 할 것처럼 전달해 온 국민이 속아 넘어갔다. 정의용 대북특사가 북한을 다녀와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말 대신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전했다. 미국에 가서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니 대화를 하라고 권했다. 미국은 처음에는 모르고 놀아났고 우리 정부는 알면서도 국민을 속였으며 언론도 속아 넘어갔다. 안보전문가들이 누누이 경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대부터 이어진 북한의 주장이다. 김일성 때는 남한의 미국 전술핵 철수를 위한 용도로, 김정일 이후에는 (1991년 미국 전술핵 철수) 북한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미국의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로 활용했다. 핵우산, 한미연합훈련, 미국 전략자산 전개, 주한미군, 유엔사, 주일미군, 한미동맹 제거까지 이현령비현령으로 연결했다. 물론 조선반도 비핵화를 받지 않겠다고 했으면 남북대화는 물론 북미대화 자체도 성사되지 않는 등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부는 북한의 거짓 의도를 국민에게 알렸어야 했는데 안 했으니 속였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 논리로 무엇을 얻고자 하나.
△북한은 단계적으로 비핵화에 접근하자며 ‘배드스몰딜(bad small deal)’이나 핵 동결을 관철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얻으려 한다. 소위 가짜 비핵화다. 배드스몰딜은 자기들이 가진 핵 능력 전체 중 일부만 양보하고 대신 주요 제재 해제 등 필요한 것은 다 얻어가려는 것이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미국과 타결하려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먼저 전체 핵 능력 폐기를 약속하고 이행을 단계적으로라도 하자는 빅딜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나 이달 초 스톡홀롬 실무대화도 결렬됐다.
-김정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아버지가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유훈을 남겼다’는 내용이 있다는데.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말라’는 김정일의 유훈이야말로 북한의 진심이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의 허상을 잘 보여준다. 조선반도 비핵화가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를 의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모든 위협을 먼저 제거하라는 명분으로 활용해왔다. 그 궁극적인 지향점은 한미동맹 해체다. 북한의 대남전략은 처음도 끝도 모두 한미동맹 해체에 맞춰져 있다. 핵은 일부라도 지키고 한미동맹은 해체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수준은.
△스톡홀롬평화연구소는 북한에 핵폭탄이 15~20개, 미국 정보기관은 60개 이상 있다고 본다. 우리는 대체로 미국 정보기관의 평가가 맞는다고 본다. 계속 만들고 있어 머지않아 100개에 이를 것이다. 핵폭탄의 종류도 플로토늄탄과 우랴늄탄은 물론 수소폭탄까지 만들었다. 핵무기 투발 수단으로 개발한 미사일 파워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단·중·장거리미사일을 개발했고 숫자도 어마어마하다. ICBM급도 화성 14·15호 시험발사를 2017년에 성공시켰다.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도 이미 극복했다고 본다. SLBM도 올해 발사에 성공했다. 다만 핵폭탄을 미사일에 실어 완벽히 사용할 수 있는 사용가능성(usability)이나 정확도·안정성 등은 아직 불확실하다.
-ICBM·SLBM을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하는 이유는.
△미국을 바로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도 ICBM과 SLBM에 대해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 북한이 미국을 위협하려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협상용이다. 북한이 핵무기 일부를 양보하더라도 일부는 남겨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고지에 올라 있어야 협상에 유리하다. 둘째는 방어용이다. 북한이 비록 작은 나라지만 미국이 건드리면 우리도 미국을 때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공격을 막으려는 전략이다. 셋째는 계산된 광기전략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 사마귀 한 마리가 수레바퀴 앞에서 앞발을 들고 못 간다고 떼를 쓰니 마차가 기가 막혀 피해간다는 당랑거철(螳螂拒轍) 전략이다. 북한은 이미 2017년 ‘핵폭탄을 괌에 때리겠다’ ‘미국본토를 때릴 수 있다’고 협박해 한미동맹이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미국이 핵폭탄을 맞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미국 국민에게 갖게 한 것이다. 특히 미국 국민들과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의 친북·친중정책에 진저리를 내는 상황이라 이런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북한이 ICBM·SLBM 개발에 사활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 핵 게임의 포커스가 한미동맹 해체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북한에 미국은 적화통일을 코앞에서 놓치게 한 철천지원수다.
-미중 패권전쟁 등 주변 환경이 북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데.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며 북한의 입지가 많이 넓어졌다. 아시아에는 중국이,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미국과 신냉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 제휴를 맺고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할 수 있는 합동군사훈련을 매년 발해만,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 남중국해에서 벌인다. 중국은 김정은 집권 이후 7년 동안 쳐다보지도 않다가 미국의 전방위 공세를 받자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여러 차례 했다. 중국은 이제 핵공모(nuclear collusion) 형태로 북한의 뒤까지 봐준다.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은 하지만 뒤로는 밀무역을 통해 북한의 생존을 돕는 이중 플레이를 벌이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고 있다는 것인가.
△중국이 얘기하는 북한의 비핵화도 조선반도 비핵화와 맥을 같이한다. 북한에서 핵을 없애는 대신 주한미군도 철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무한정 보유하는 데 대해서는 우려한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일본이 핵무장을 한다면 양이나 질로 중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국도 마찬가지이고 대만·베트남 등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핵을 방조하는 것은 미국의 반핵확산 정책을 믿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대해 핵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 핵우산과 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를 제공하는 것이다. 미국이 역내 균형을 위해 한국과 일본에 핵무장을 허락하겠다고 하면 그때는 달라질 수 있다. 한국 안보전문가들은 미국이 반핵확산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주제로 토의도 많이 했고 미국에서도 문제를 제기해왔다. 북중러 등 사회주의 블록은 모두 핵을 가졌는데 한국과 일본에는 없을 경우 동맹국을 비대칭 위협에 빠뜨리고 결국 미국의 전략이익에 손해를 초래한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다. 신냉전 구도가 지속된다면 미국의 반핵확산 정책 변경과 관련된 토의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돼 있다.
-김정은이 핵무기 포기의 대가를 요구한다면.
△북한이 핵무기 포기의 대가로 바라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미동맹 해체, 다른 하나는 북한 체제 안정 보장이다. 북한 체제 보장은 미국이 정말로 해줄 수 없다. 세습·신격화한 독재체제를 보호하는 것은 미국의 건국이념과도 크게 상충된다. 한미동맹 해체도 미국이 쉽게 결정할 수 없다. 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할 소중한 전초기지를 포기하는 것을 미국 여론이 쉽게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한미동맹이 사라진다면 한국은 증권시장 붕괴, 자금의 급속한 이탈 등 경제가 뿌리째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전체의 흐름이 신고립주의로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트럼프라는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한미동맹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결정타를 먹인 것이 문 정부의 좌파적 수정주의 기조다. 친중·친북·반일·탈미 대외기조까지 합쳐지니 한미동맹이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다. 한미동맹이 튼튼하다는 외교관들의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한국이라는 전초기지를 포기하면 미국은 전략적 이익에서 손해를 보지만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다. 한미동맹이 해체될 경우 남한은 즉시 사회주의권에 빨려 들어갈 것이다. 먹물 먹은 사람이나 돈 가진 사람들은 인종청소를 당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현실을 국민들이 알고 투표에 임해야 한다.
-북핵 문제의 예상 시나리오가 있다면.
△현상유지·빅딜·배드스몰딜 세 가지가 될 수 있다. 현상유지는 북한의 스몰딜과 미국의 빅딜이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세월이 무한정 흘러가는 것이다. 북한은 제재를 받지만 어영부영 핵보유국 행세를 하게 된다. 제일 가능성이 높다. 빅딜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대신 경제적으로 많은 반대급부를 가져가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지만 가능성이 제일 낮다. 중국이 북한의 목을 조르지 않으면 어렵다. 이게 가능해지려면 미국이 피를 흘리면서까지 중국의 목을 졸라줘야 한다. 배드스몰딜은 미국과 북한이 야합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 능력의 일부만 내놓고 미국도 이만하면 잘된 거라며 박수를 치는 것이다. 미북관계 정상화, 제재 해제, 주한미군 감축, 한미연합훈련을 의미 있게 줄이거나 없애는 정도의 조치가 뒤따를 것이다. 가짜 비핵화 타협이다. 정부는 이 세 가지 모두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시나리오별로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첫째 시나리오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동맹 차원에서 제공되는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한미동맹부터 강화해야 한다. 흐지부지된 재래식 전력의 3축체제(킬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 대량응징 보복) 강화도 필요하다. 또 미국의 반핵확산 정책을 바꾸고 일본·베트남 등 중국 주변국과 협력해 핵 제조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장기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핵 잠재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굉장히 복합적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시나리오를 위해서는 북한에 굉장히 많은 돈을 지원하면서 북한을 끌어안아야 한다. 셋째 시나리오로 간다면 북한·미국·한국 정권은 저마다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했다고 대환영하겠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희생자가 될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은 계속되고 우리는 인질로 잡힐 것이며 북한은 남한에 계속 갑질을 해댈 것이다. 상대의 관용에 의존하는 평화는 가짜 평화다. 상대가 평화를 깨면 더 손해 볼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가는 힘과 지렛대를 가지고 상대와 화해 협력하는 게 진짜 평화다.
-무엇을 해야 하나.
△문 대통령이 취임 때 화합과 통합으로 가는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해 기대가 적지 않았는데, 이 정부는 어떠한 대비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남북화해와 안보는 동행해야 한다는 것이 대북정책의 대원칙이고 정론이다. 북한과의 화해협력 시도는 당연히 해야 하지만 저들에게 굴종하고 복속되는 가짜 평화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또 지금처럼 외교고립으로 계속 간다면 북한과 중국에 붙을 수밖에 없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를 철회하고 일본과 관계 정상화를 이뤄야 한다. 마지막으로 축소지향 국방개혁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미래 위협이 부상하는 상황이다. 한미동맹의 신뢰도 재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청와대 친북인사부터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이런 것을 해주면 좋겠지만 가능성은 1%도 없는 것 같다.
-미국이 2018년 양국 국방장관 간 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서 지금까지 사용해온 ‘핵우산(nuclear umbrella)’이라는 용어를 ‘핵능력(nuclear capabilities)’으로 바꿔 핵우산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우산 보장은 한미동맹 조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1978년부터 한미 국방장관이 만나는 연례안보협의회에서 공동성명에 표현돼왔다. 그러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핵을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정책(no first use)을 도입하면서 문서상 다소 약화된 것이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화해 표기와 달리 한국은 예외로 언제든지 핵우산을 제공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한미 양국 대통령이 서명한 ‘공동 비전(Joint Vision Statement)’에서도 확장억제를 보장하는 만큼 핵우산은 제공되지만 표현이 약화됐다고 볼 수 있다. 조약이 아닌 만큼 핵우산의 신뢰성은 한미동맹의 건강성에 달려 있으니 한미동맹의 신뢰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He is…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나 영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대우그룹 등 민간에서 일하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핵전략·핵확산 분야 국내 1호 박사다. 귀국한 뒤 국방연구원(KIDA)에서 안보 문제를 연구했으며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군구조분과위원장, 통일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반대해 국방연구원에서 쫓겨났다가 정권이 바뀐 후 복직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