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에 더해 일본과 유럽연합(EU)까지 나서 무역 강국인 한국을 공격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관련 예산이 부족해 자문을 하는 법률회사에 제때 돈을 못 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글로벌 무역 강국과의 통상분쟁이 격화하며 법률 비용이 가파르게 증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런 예산부족 상황에서는 국제 통상분쟁에 시의적절한 대응이 어려워 더 큰 국익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9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0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가 올해 로펌에 지급해야 하는 자문비 37억 8,200만 원을 지급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못 준 돈은 내년 예산안이 올해 국회에서 통과돼야 지급할 수 있다. 지난해(15억9,200만원)에 이어 올해도 예산이 부족해 로펌에 돈을 못 준 셈이다.
빚을 진 이유는 글로벌 무역분쟁 속에 주요국과의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이 빠른 속도로 늘어서다. 2017년 4건이던 분쟁 건수는 올해 10건, 내년에는 15건(예상)에 이를 전망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수산물 수입제한과 공기압밸브 반덤핑, 스테인리스 스틸바 반덤핑, 조선보조금 등으로 한국을 무더기로 WTO에 제소한 상황이다. 또 미국의 무역 압박에 우리도 미국에 대해 철강·태양광·세탁기 등 3건을 제소했다. 미일과 싸우는 와중에 EU도 우리 정부의 조선산업 지원과 EU산 쇠고기 수입금지조치 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며 WTO 제소를 경고하고 있다. 일본이 핵심산업 부품 수출과 관련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 것 역시 WTO로 갈 가능성이 높다. 통상본부의 관계자는 “산업 담당과의 예산이 수 천억원 수준인데 같은 규모의 통상조직은 수십억에 불과하다”고 예산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를 감안해 정부가 올해 예산을 234% 늘린 233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예정처는 이례적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적했다. 국회 예정처는 “용역비용 지급이 지연되면 해당 로펌과의 신뢰관계가 훼손될 수 있고 나아가 가용 예산이 소진된 상황에서 신규 분쟁이 발생하면 적기 대응도 곤란해진다”며 “예산부족으로 WTO 분쟁에 적극 대처 못 하면 막대한 국익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 가용수단을 활용해 대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