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꼬박 24시간이 걸려서야 닿을 수 있는 지구 반대편 나라 페루의 수도 리마. 지난 1일(현지시각) 리마 시내 교통통신부에서는 남미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전 세계 여행 애호가들의 성지인 마추픽추로 통하는 새로운 관문공항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신고식이 열렸다. 마추픽추와 불과 50여㎞ 떨어진 곳에 지어지는 ‘친체로 신공항’은 한국이 해외인프라 분야에서 국가간계약(G2G)을 통해 처음으로 따낸 값진 성과다. 인공지능(AI)과 생체정보 등 최첨단기술이 적용될 ‘한국형 스마트공항’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날 사업에 착수한 친체로 신공항은 5년간 총 사업비 5억800만달러(약 5,588억원)를 투입해 2024년 말 개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마추픽추로 가는 여행객들은 쿠스코 내 아스테테 공항을 이용해왔다. 하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탓에 항공안전에 위협이 될뿐더러 인근에 주거·상업지가 밀집돼 소음문제가 제기돼왔다. 결국 페루 정부는 친체로를 새로운 공항 부지로 낙점하고 경쟁입찰을 통해 사업을 대행할 국가를 물색했다. 한국공항공사는 국내 민간기업들과 손잡고 컨소시엄을 구성해 경쟁에 뛰어들었고 캐나다와 프랑스, 스페인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수주에 성공했다. 한국공항공사는 페루 정부를 대신해 업체 선정에서부터 설계, 시공, 감리, 시운전에 이르는 모든 사업과정을 총괄 관리하게 된다. 그동안 독일과 스페인 등 사실상 유럽기업들이 독점해오던 공항 인프라 건설시장에서도 우리의 경쟁력을 인정받게 된 셈이다. 한국공항공사는 이번 사업 수주를 계기로 향후 남미와 동남아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친체로 신공항이 완공되면 연간 최대 57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여객터미널과 계류장, 활주로 등 첨단시설을 갖추게 된다. 기존 아스테테공항(170만명)의 3배가 넘는 규모다. 특히 활주로 길이가 늘어나고 대규모 계류장이 들어서면서 장거리 국제노선 취항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리마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지 않고 곧장 쿠스코로 진입이 가능해짐에 따라 마추픽추로 가려는 여행객들로선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된 셈이다. 특히 한국공항공사는 천혜의 자연환경 보전과 지역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제주국제공항의 성공모델을 이곳 친체로 신공항에 접목할 방침이다.
이날 현지에서 열린 신공항사업 착수식에서는 친체로 신공항에 대한 페루인들의 높은 기대감이 그대로 묻어났다. 카를로스 아르뚜로 교통통신부 차관은 “여러 나라들이 친체로 신공항사업 참여를 원했지만 수많은 성공경험을 축적한 한국이야말로 우리의 기대를 가장 잘 충족시켜줄 것으로 믿고 낙점했다”며 “신공항이 건설되면 관광객유치를 통한 지역개발뿐 아니라 양국관계도 더욱 돈독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에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친체로 신공항은 세계가 아끼는 문화유적지인 마추픽추의 관문공항이자 페루를 대표하는 국제공항이 될 것”이라며 “사업에 참여하는 한국기업들과 함께 지난 40여년간 쌓아온 모든 노하우와 역량을 쏟아부어 중남미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신공항이 들어설 친체로에서도 현지 주민들의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쟝 폴 쿠스코 주지사는 “신공항은 단순한 인프라 구축을 넘어 낙후된 지역개발과 농산물의 해외수출 판로를 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선조인 잉카가 마추픽추라는 위대한 유산을 전수해줬듯 우리는 후손들에게 신공항을 선물로 남겨주고 싶다”고 말했다. 친체로가 위치한 쿠스코는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를 지배한 잉카제국의 마지막 수도다.
/리마·쿠스코(페루)=김현상기자 kim01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