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지역난방 시장은 이제 포화상태입니다. 기온이 낮으면서도 한국과 비슷한 집단거주 문화를 가진 북방권을 신시장으로 삼아 수출길을 열어보고자 합니다.”
황창화(사진)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은 3일 서울경제와 만나 “한국의 우수한 집단에너지 노하우는 세계에서도 통할 것”이라며 세계 시장에서의 성공을 자신했다. 지역난방은 열병합발전소로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해 120도 이상의 중온수를 발생시키고 이를 도로나 하천 등에 묻힌 배관을 통해 건물로 흘려보내는 난방 방식이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한국의 집적된 주거 구조 형태는 자연스럽게 지역난방 기술의 고도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신도시를 하나 지으면 그곳에 지역난방 시스템을 설치하는 식의 ‘도시의 팽창’에 기대온 측면이 있고 이는 지역난방공사에 향후 성장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안겼다는 것이 황 사장의 설명이다. 세간에서는 각 세대마다 열원을 두는 개별난방이 대세가 되면서 지역난방은 다소 구식이라는 인식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담=서정명 경제부장 vicsjm@sedaily.com
황 사장은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난방 장치 설치뿐 아니라 시스템 운영, 유지보수, 교육 훈련, 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외 진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역난방공사는 조금씩 해외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몽골의 21개 지방도시 가운데 10개 지역의 노후화된 소규모 지역난방 설비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따내 오는 2022년 1월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해당 지역에서 설계와 시공감리, 시운전, 정비 등 지역난방 관련 종합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보다 앞선 지난 2013년 몽골 동부 수흐바타르주(州)의 주도인 바룬우르트에 난방 설비를 구축한 바 있다. 또 국제기구인 기후기술센터의 기후기술 현지화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서 지역난방과 연계 가능한 에너지 공급 시스템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베오그라드 사업의 진행 여부는 아직 미정이지만 축적된 사업 능력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지역난방공사의 위상을 높였다고 황 사장은 자부했다. 그는 “집단 거주 형태를 지닌 지역이 아무래도 1차 목표”라며 “주로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난방은 절실하지만 시설이 낡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선진국 가운데서는 탄소 배출 저감과 열 효율 증대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영국이 지역난방으로의 전환을 검토하고 있어 이를 잘 노리면 승산이 있다. 지역난방은 중앙에 열원 한 개를 둬 개별난방에 비해 오염물질 배출이 적다는 장점이 있는데 점차 국가나 권역별로 탄소 배출량에 민감해지는 경향을 고려하면 ‘지역난방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황 사장은 “유럽은 개방·분산형 구조가 많아 이에 적합한 집단난방에 대한 모델 개발은 분명 필요하다”며 “이밖에 베트남·칠레 등에 대한 진출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한 뒤 투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국내 사업은 ‘에너지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밑그림으로 그렸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열전달 효율을 끌어올리고 수급 위기와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식으로 첨단화를 꾀한다는 계획이다. 황 사장은 “가령 노후 아파트의 경우 ‘겨울철 보일러를 아무리 틀어도 춥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데 이는 열 배관이 낡고 오래됐기 때문”이라며 “첨단 기술을 활용해 수요·공급을 정교하게 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에너지 시스템 구축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지역난방공사는 핵심 운영 데이터인 열과 전력의 생산·수송·판매 분야 정보를 융·복합해 에너지 효율 향상을 목표로 한 스마트 에너지 관리 시스템 구현을 준비하고 있다. 상호 연관성이 높은 생산·수송·판매 분야의 데이터를 활용하면 열 손실 비용을 줄이고 정보 활용을 통한 신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또 지난 10여년 동안 쌓아온 지사별 운영특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열 수급 위기 조기 경보 시스템을 지난달 설치했다.
생산과 수송시설에서는 가상현실(VR)·사물인터넷(IoT)·드론 같은 신기술이 일찌감치 쓰이고 있다. 지역난방공사는 6월 VR 기반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가상 발전소를 구현했다. 경기도 파주의 열병합발전소를 본떠 만든 이 가상 발전소는 플랜트 건물과 터빈, 펌프 등 주요 기기에 대한 상세한 3차원(3D) 모델링으로 가능했으며 현재 현장 근로자의 업무 숙련도와 안정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 내년부터 지하 가압장(수압을 높여 고지대 등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시설)의 침수를 감지하는 지능형 CCTV를 설치하고 IoT 기반 스마트 무전 단말을 통해 비상 시 위험 지역의 정보 및 설비 매뉴얼, 도면 등을 현장 근무자와 공유한다는 방침이다.
수송 과정에서는 보다 종합적인 기술 적용이 이뤄진다. 황 사장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기반으로 생산뿐 아니라 수송·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대한 관측과 제어가 가능한 열 수송망 통합 공간정보 시스템이 내년 3월이면 완성된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눈으로 보거나(감시, 열 화상 카메라) 소리로(청음) 이상을 감지하던 것을 넘어 드론·IoT·로봇을 접목하는 신규 진단 방법 역시 개발하고 있다. 황 사장은 “열 수송 시설은 고온의 유체를 담고 있으면서도 지하에 매설된 특성 때문에 적기에 이상 신호를 발견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신기술 적용은) 현재 인력 위주의 유지 관리를 기술 중심으로 바꾸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각종 기술 적용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고객에게 저렴하고 안전한 지역난방을 공급하는 것이다. 황 사장은 “생산·수송에서 비용을 절감했으니 사용자의 요금 역시 합리화될 것”이라며 “상시 모니터링으로 중온수 누출 등 긴급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안전사고 방지는 지난해 말 경기도 고양시 백석 지하철역 인근에서 발생한 온수관 파열 사고 이후 황 사장이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다. 황 사장은 “(지역난방공사로서는) 유례없는 큰 사고였고 사내 안전 규정이 느슨한 측면도 분명 있었다”며 “사고 이후 이상이 발견된 443개 배관을 고치고 심한 것은 교체하는 전면 보수 작업을 서둘러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또 올해 자체 예산을 들여 열 수송관 안전 관리를 전담하는 지역난방안전을 자회사 형태로 설립해 안전 강화에 힘쓰기로 했다.
에너지 공기업이라면 빠지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 주민의 반발이다. 지역난방공사 역시 2017년 말 전남 나주에 SRF 열병합발전소를 설립했지만 민원이 이어지며 가동이 이뤄지지 못했다. 지역난방공사는 황 사장 취임 즈음인 올해 1월부터 지역주민을 포함해 산업통상자원부·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민관협력 위원회를 꾸려 계속 협의를 이어나갔고 9월 환경영향 및 주민 수용성 조사, 기존 방식에서 변경 시 지역난방공사의 손실 보전방안 마련 등을 담은 기본 합의서를 이끌어냈다. 사실상 해당 지역 주민의 요구 상당수가 관철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황 사장은 “정부와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성공적으로 도출한 사례”라고 자평했다. 이어 “발전소가 주민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파악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공익적 가치와 시장의 요구가 충돌하는 상황임과 동시에 시장형 공기업인 지역난방공사로서는 주주의 이익 역시 고려해야 하는 간단하지 않은 상황이고 지금으로서는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우나 어쨌든 합의에 이르렀으니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역난방공사는 지난달 창립 34주년을 맞아 8차 중장기 경영전략을 발표했다. 또 2028년까지 △공급 세대수 210만가구 △신사업 매출 5,000억원 △사회적 가치 창출지수 100점 △종합 청렴도 1등 4개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특이한 점은 중장기 전략하면 등장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닌 수치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황 사장은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달성을 위한 동력이 더 크게 생길 것”이라며 “첫번째 목표인 공급 세대수 210만가구는 국내 에너지 수요 성장세가 둔화하고 대규모 택지개발 부재 등으로 (달성이) 녹록지 않겠으나 고양 창릉 3기 신도시, 기타 고시 외 지역에 대한 전략적인 수요 개발에 착수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신재생·해외시장 등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전사적 역량을 투입하겠다고도 했다.
정부가 비전을 제시한 수소경제 활성화에 지역난방공사 역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새 먹거리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지역난방공사는 4월 자체적인 추진 방안을 수립해 지역난방 네트워크와 연계한 연료 전지 확대 보급, 수도권 입지 및 열 수송관 건설 노하우를 활용한 생산·수송 인프라 구축사업 등을 세부 계획으로 정했다. 현재 경기도 동탄지사 내 11.44㎿ 규모의 수소 연료전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세종지사에 15㎿ 규모의 수소 연료전지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또 지난달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스마트시티 공동주택 기계실 내 연료전지를 설치하는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 황 사장은 “수소 기반 사업 모델 구축을 위한 연구는 현재 초기 단계”라며 “지역난방공사는 도심지 인근에 열병합 발전시설을 운영하고 있고 주변에 다양한 폐기물 처리시설과 협력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도심에서 수소를 생산·공급하는 데 분명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이산화탄소의 포집 및 처리 기술을 활용해온 경험을 살려 수소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황 사장은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로 국내 산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부품 국산화에도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고온 상태로 노출된 부품이 많은 만큼 상시적인 교체가 많은 편인데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독일 지멘스, 일본 미쓰비시 등 3개 기업이 사실상 터빈 등 주요 부품을 과점하는 상황에서 국내 중소기업의 부품 비중은 낮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이 기회에 기술력이 충분한 중소기업을 발굴할 수 있도록 전반적으로 (업계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외국 기업을 대체하는 수준은 힘들겠으나 적어도 끌려다니지 않는 선까지는 최대한 (국산화를) 해보자는 게 나의 목표”라고 부연했다. /정리=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사진=오승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