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기계업체들의 수주 텃밭인 중국 시장이 현지 업체들과의 출혈경쟁으로 수익성이 나빠지며 선진국 시장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건설기계업체들은 지난 2015년 중국 시장이 침체되며 적자에 대한 경험이 있는 만큼 위기에 앞서 중국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낮출 계획이다. 대신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인 북미·유럽 등 선진시장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7일 건설기계 업계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는 연결기준 3·4분기에 매출 1조8,567억원, 영업이익 1,54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기간 보다 0.6% 늘었고, 영업이익은 19.3% 줄었다. 순이익은 39.9% 줄어든 533억원이었다.
현대건설기계는 3·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6,396억원, 378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매출은 지난해 3·4분기보다 10% 줄었고, 영업이익은 1.6% 늘었다. 그러나 영업이익 중 107억원 가량은 환 차익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건설업계가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중국 시장 때문이다. 중국 시장은 올해 정부 주도 투자와 환경 규제, 교체 주기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역대급 호황이 예상됐다. 그러나 중국 현지 업체들의 ‘안방 지키기’ 공세가 거셌다. 중국 업체들은 공격적인 마케팅(할부판매·리스판매·현금결제비중 등)과 자국 프리미엄을 앞세우며 점유율 확대에 나선 것이다. 국내 업체들도 마케팅 비용을 확대하며 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건설기계의 3·4분기 중국 매출은 각각 3.8%, 7% 가량 감소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올해 1~3분기 중국시장 굴착기 판매는 전년보다 3.4% 줄었다. 같은기간 중국 최대 건설기계업체 사니의 판매량은 28% 늘었다.
중국 업체들은 안방 시장의 성장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도 확대하고 있다. 영국 건설정보전문업체 KHL에 따르면, 사니의 지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은 4.6%로, 2017년보다 한단계 상승한 7위에 기록했다. 반면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건설기계는 각각 2017년보다 2계단과 1계단 하락한 9위와 20위를 기록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업체들의 판매량 감소가 다른 국가 대비 두드러진다”며 “중국 기업 위주로 독주 체제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건설기계 업계는 수익성 위주 경영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특히 최신 기술이 집약된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가 몰리는 북미와 유럽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북미와 유럽 시장에 고객 주문사항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커스터마이제이션 센터(Customization Center)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시설은 한국에서 공급받은 반제품을 현지 고객 주문사항에 맞춰 완성하는 조립시설이다. 지난 4월엔 미국 시애틀에 부품공급센터를 신규 오픈하며 부품 공급역량을 강화했다. 애틀란타와 마이애미에 이어 미국 내 세번째 부품공급센터를 오픈해 신속한 부품공급으로 고객의 장비가동률 및 만족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현대건설기계는 벨기에 유럽지역 통합 신사옥을 건립하고 유럽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북미와 유럽을 겨냥해 국내 1위 농기계업체인 대동공업과 손잡고 ‘스키드로더(소형·경량 장비)’ 신제품 공동 개발·판매에 나섰다. 현대건설기계는 앞으로 10년간 최대 8,000대 규모의 스키드로더를 판매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건설기계 업체들의 이런 변화는 실적에서도 읽힌다. 두산인프라코어 유럽법인은 9월 한 달 간 건설장비 548대를 판매해 월간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올해 9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3,254대로 역대 최대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건설기계 업계 관계자는 “유럽과 북미 시장은 기술 경쟁력이 강한 업체만이 살아남는 곳”이라며 “내년부터 본격적인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