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최근 증가하고 있는 부실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이 적극 개입하는 미국식 파산제도를 확대·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문학적인 재정 지원을 쏟아부으며 부실기업의 생명줄을 연장시켰던 중국 당국이 재정 악화 등 부작용이 커지며 한계에 달하자 서구식 처방전을 적극 활용해 대대적인 부실기업 정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중국 제조업체들의 실적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중국 당국의 부실기업 정리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수년간 재정을 쏟아부었던 중국이 드디어 부채 정리에 나섰다”며 “중국 정부는 채무불이행을 하는 기업에서 상당 부분을 회수하기 위해 파산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법원의 관리를 받는 기업의 구조조정을 도와 기업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채권자에게 시간을 줘 채무 부담을 덜어주는 미국식 파산절차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2015년 파산법원이 지역별로 세워진 후 지금까지 전국 90곳에 파산기업 처리 시스템이 구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파산법원은 로펌과 회계법인 등의 관리자를 지명하고 이들이 채권자들을 조직해 자산의 목록작성과 매각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WSJ는 “중국 정부가 늘어나는 부실기업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신호”라며 “이러한 파산제도는 부실기업에 재정적 지원을 해왔던 지방정부들의 재정적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국 ‘개혁·개방 1번지’이자 ‘첨단기술의 허브’인 광둥성 선전시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4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지방정부들의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에는 2007년 파산법이 공식 도입됐지만 중국 법원은 정치·사회적 불안과 대규모 해고에 따른 실업을 우려해 파산신청을 기각해오며 원칙대로 실행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중국 파산법원은 사회불안을 피하기 위해 채권자보다 주주들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로 인해 많은 부실기업이 정부 보조금과 국유은행들의 대출금으로 연명해왔다. WSJ는 중국 법률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상장기업과 관련된 일부 사건에서 법원은 그동안 배상 우선순위가 높은 채권자들을 희생시키면서 사회적 불안을 줄이기 위해 손실을 입은 소액 투자자에게 우선권을 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 파산기업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중국 정부는 전략을 수정했다. 2015년 3,568건에 불과했던 중국 법원의 파산 승인 건수는 지난해 1만8,950건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는 280억달러의 빚을 져 국유기업 중 최대 실패로 평가된 보하이철강그룹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부실기업 증가로 국고보조금과 국유은행 대출을 지급하던 방식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30년간 중국에서 일한 기업 구조조정 회사인 알바레즈앤마셜의 임원인 론 톰슨은 “부실기업들이 회생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중국 정부가 인정하고 있다”면서 “당국은 파산기업들을 체계적으로 다룰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갈등의 격화로 부실기업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점은 중국 당국이 파산제도를 적극 도입하는 이유로 꼽힌다. 중국 최고인민법원의 고위관계자인 두완화는 최근 국영매체 기고에서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관세 인상은 더 많은 기업의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법원은 비가 오기 전에 집을 수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파산기업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해 판사에게 목표량을 정해주면서 더 많은 재량권을 주고 있다. WSJ는 중국 남부 후난성의 경우 판사가 파산기업 1건을 처리하면 민사사건 30건을 처리한 것과 같이 평가해주는 등 파산절차 도입을 장려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