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산소유도인자(HIF)를 활용하면 뇌졸중·심근경색·빈혈뿐 아니라 암까지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일본과 중국에서는 HIF 유전자를 활용하는 신약이 이미 출시됐는데 치료질환을 확장해 암을 정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케일린(62) 미국 다나파버암센터 교수는 7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대한종양내과학회(KSMO) 2019’의 기조연설에서 “체내의 산소 조절은 HIF라는 단백질을 통해 조절되는데 두 가지 관련 단백질 중 한 가지는 신장암과 영향이 깊다”며 이같이 밝혔다.
케일린 교수는 우리 몸의 세포가 산소 공급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밝혀내 피터 랫클리프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교수, 그레그 서멘자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와 함께 지난달 7일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는 망막·신경·혈관 등에 악성 종양을 발생시키는 폰히펠린다우(VHL) 증후군을 연구하던 중 HIF 유전자가 세포의 체내 산소 농도 감시 및 조절의 핵심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한종양내과학회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케일린 교수는 이날 연설에서 “혈관이 없으면 죽게 되는 암세포지만 HIF-1 돌연변이는 저산소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암세포에 산소를 공급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이 유전자가 어떻게 저산소량을 감지하는지 밝혀낸 만큼 이를 토대로 암 치료제 개발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암세포를 직접 노리는 2세대 ‘표적항암제’, 인체 내 면역환경을 조절하는 3세대 ‘면역항암제’에 이어 산소의 농도 감지 및 조절을 통해 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제시했다.
임석아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이에 대해 “HIF-1을 억제하는 항암제는 현재 임상 2상 단계인데 신장암에 어느 정도 효과를 보여줘 다른 암종으로 치료질환을 확장할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정순 대한종양내과학회장 역시 “저산소 상태에서 암세포만 잘 자라는 원인이기도 한 HIF 유전자를 활용한 임상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케일린 교수는 이날 강연 중간중간 노벨상에 이르기까지의 연구 과정 중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좌중을 휘어잡았다. 신장암 환자에게 ‘CDK4/6’을 억제하는 항암제 ‘팔로시클립’을 28일간 투여한 뒤 환자의 예후를 관찰한 연구 결과를 설명하며 “실험실의 박사후연구원(포스트닥)들이 28일 뒤 다 도망가 투여를 지속하지 못했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지난 5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을 찾아 연구 내용과 과학자로서의 삶 등을 강연했던 케일린 교수는 8일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에서 ‘과학자로서의 삶 및 연구’를 주제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