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서 여성 서사가 강세를 이루는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중년 여배우 둘이 맞대결을 펼친다. 14년 만에 영화로 복귀하는 이영애와 꾸준히 영화에 출연한 김희애가 그 주인공이다. 과거에는 전성기를 지난 여배우들이 활동을 중단하거나 나이에 걸맞은 조연으로 변신했지만 이제는 ‘중년 여성’과 ‘엄마’도 작품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특히 미투 운동 이후 페미니즘 서사는 관객들을 파고드는 데 힘을 얻었다. 이미 안방극장에서는 여성 서사의 힘이 입증됐지만, 티켓값을 지불하며 적극적 소비행위가 요구되는 영화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쓰백(2018)’, ‘82년생 김지영(2019)’ 등 여성 중심의 영화뿐만 아니라 ‘가장 보통의 연애’ 등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도 여배우가 기능적인 역할과 장치에 머물지 않고 주체적으로 진화 중이다.
우선 이영애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4)’ 이후 14년 만에 ‘나를 찾아줘’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2009년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단했고 2017년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로 안방극장을 찾은 이후 2년 만이기도 하다. ‘나를 찾아줘’는 6년 전 실종된 아들을 봤다는 연락을 받은 정연(이영애)이 낯선 곳에서 아들을 찾아 나서는 스릴러물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부터 아들을 홀로 찾아 나서는 강인함 등 이영애의 한층 섬세하고 깊어진 감정 연기가 진한 감동으로 이어진다. 지난 4일 제작보고회에서 이영애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스릴러지만 따뜻하고, 지리멸렬한 현실적인 인간 군상을 통해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여운 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엄마로서 보낸 7~8년이 만들어낸 감성은 분명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에서 아들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주체가 어머니 정연이라는 부분은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영화 ‘그 놈 목소리(2007)’에서는 아버지(설경구)가 어머니(김남주)보다 주체적으로 유괴된 아들을 찾아 나섰다. 27일 개봉.
결혼 후에도 꾸준히 활동해 온 김희애는 ‘윤희에게’로 관객들과 만난다. 이영애가 스릴러물로 모성애를 연기한다면, 김희애는 감성 멜로로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도 선정됐던 이 작품은 윤희(김희애)가 우연히 편지 한 통을 받고 딸과 여행을 떠나고 여행지에서 비밀스러운 첫사랑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는 내용을 담백하고 서정적인 영상에 담아냈다. 과거 영화 속에 등장하던 엄마의 첫사랑이란 그저 가족 에피소드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러나 ‘윤희에게’에서는 엄마의 첫사랑이 주축이고, 딸은 엄마의 첫사랑을 통해 엄마의 상처를 알게 되고 어루만진다. 엄마의 사연이 모녀 모두를 성장시킨다는 여성 서사가 영화의 큰 줄기다. 김희애는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도 될 수 있다는, 선입견을 깰 수 있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희애 특유의 감성적인 목소리 톤은 영화의 서정미를 더 한다. 발음 하나, 쉼표 하나에 감성을 담은 내레이션이 첫사랑의 설렘과 아련함을 모두 담아 스크린을 압도한다. ‘잘 지내니? 네 편지를 받자마자 너한테 답장을 쓰는 거야. (중략) 용기를 내고 싶어.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야’. 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