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재정확대론 경제 못살려…법인세 인하 등 親시장정책 급하다"

■2020한국경제 대전망…경제석학들이 제시한 해법은

송흥선(왼쪽부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김호원 서울대 산학협력 중점교수가 12일 서울 종로구 S타워에서 열린 ‘2020 한국 경제 대전망’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도 한국 경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권욱기자송흥선(왼쪽부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김호원 서울대 산학협력 중점교수가 12일 서울 종로구 S타워에서 열린 ‘2020 한국 경제 대전망’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도 한국 경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권욱기자



“정부가 확대재정정책을 통해 경기 하방 리스크를 완화하겠다고 하지만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투자가 아니면 근본적 처방이 될 수 없습니다. 확대재정정책으로 경기가 활성화하는 재정 승수의 크기도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탓에 민간 부문 활력이 저하된 상황에서 재정에 기댄 성장이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비롯한 ‘2020 한국 경제 대전망’을 집필한 석학들은 12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S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오리무중에 빠진 한국 경제의 탈출구는 재정 의존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경제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반기를 맞아 법인세 인하나 선별적 복지로 정책 기조를 대전환하는 것이 불확실성이 높은 한국 경제에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내년 한국 경제를 전망한 이번 책자에는 이 교수 등 43명의 저명 경제학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복지예산 늘렸는데 분배지표 악화

‘선별적 복지’로 정책방향 바꾸고

잠재성장률 높일 분야에 투자해야

재정지출보다 ‘규제완화’ 더 절실


◇“재정은 성장 부문에 투자해야”=내년도 예산이 올해보다 44조원 늘어난 약 513조원으로 편성됐지만 보건·복지 관련 예산이 181조6,00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35.4%를 차지한다. 경제전문가들은 보편적 복지 확대가 아닌 본질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류 교수는 “재정정책을 통한 단기적 경기 부양은 필요하다”면서도 “생산성 혁신, 기업 지원, 신산업 인프라 확충, 법인세 인하 등의 부문에 투입돼야 성장으로 이어지고 다시 세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돈 만큼 이제는 정책 전환에 심기일전할 때”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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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복지·일자리 예산을 늘렸지만 분배지표나 고용지표는 오히려 악화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교수는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하는 추세고 고용지표도 정부의 인위적 개입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는 정도며 분배지표는 오히려 악화했다”며 “복지 확대→세금 증가→국가 부채로 이어지는 ‘재정 트릴레마’가 여전히 우려되며 국내 경제정책의 효과성도 돌아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재정개혁의 필요성도 중요하게 제시됐다. 향후 20년간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사회보장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류 교수는 “재원 확보와 함께 미래 세대를 위한 국부펀드를 만들고 강도 높은 세제개혁과 동시에 효율적인 재정지출 등을 골자로 하는 재정개혁 계획이 필요하다”며 “지금 수준보다 더 재정을 확대하는 것은 부담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규제개혁, 10년째 제자리걸음’=규제를 대폭 풀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 지는 10년도 넘었지만 여전한 규제로 산업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만큼 규제에 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했다. 인공지능(AI) 산업은 미국과 중국에 추월당한 지 오래고 공유경제조차 규제에 발목 잡혀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에도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다. 김호원 서울대 산학협력 중점교수는 “차량공유나 원격의료 등의 신산업 창출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말해왔지만 기존 산업의 장벽에 막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의 규제 기준이 글로벌 기조에 맞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정책 방향뿐 아니라 ‘정책의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규제 때문에 기업이 휘청거리거나 다른 나라가 진작 없앤 규제를 놓고도 정부가 고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예를 들면 블록체인 산업의 잠재력이 큰데 정부는 암호화폐 관련 투기성만 바라보고 있다”며 “독자적인 암호화폐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으로 제2차 플랫폼 전쟁의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으므로 국가 차원의 전략이 빨리 수립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재정확대나 금리 인하보다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규제개혁이 더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재정지출을 40조원 늘리는 것보다 규제완화에 100억원을 쓰는 것이 더 낫다”며 “화학물질과 관련된 각종 규제가 일본은 산업부 소관인데 우리나라는 환경부 소관인 탓에 규제개혁이 어렵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갈등과 같은 대외 리스크를 위험요인으로만 보지 말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 교수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주춤하다”며 “일본과 무역갈등으로 인해 국내 소재·부품·장비 관련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백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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