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재정준칙 '고무줄'…국가채무비율 목표 5년새 10%P 늘여

'나라살림 척도' 관리재정수지도

-3% 중반까지 해마다 뒷걸음질

'유연한 재정준칙' 내년부터 추진

사실상 차기 정부 떠넘기기 지적

홍남기(오른쪽 두번째) 경제부총리와 이인영(〃 네번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8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2020 예산안 편성 당정협의’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홍남기(오른쪽 두번째) 경제부총리와 이인영(〃 네번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8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2020 예산안 편성 당정협의’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재정건전성 관리 목표가 지난 5년 새 국내총생산(GDP)대비 30% 중반에서 GDP 대비 40% 중반으로 10% 포인트나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 들어 확장재정 드라이브를 걸면서 재정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사방에서 쏟아지자 정부는 뒤늦게 ‘유연한 한국형 재정준칙’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구속력 없는 상황 모면용 구호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1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14년 발표한 2014~2018년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30%대 중반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다가 이듬해 계획에서는 목표를 ‘40%대 초반’으로 슬그머니 바꿨고, 올해는 ‘40%대 중반’으로 또다시 고쳤다.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척도인 관리재정수지도 점진적 개선(2014~2015년)→단계적 회복(2016년)→-2% 내외 관리(2017년)→-3% 이내 관리(2018년)→-3% 중반 수준 관리(2019년)로 해마다 뒷걸음질쳤다. 심리적인 마지노선이었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와 관리재정수지 적자 -3%가 재정만능주의로 인해 무너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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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최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겠다며 급격한 고령화·저출산 흐름과 세입 감소 전망을 반영해 “한국적 상황에 맞는 유연한 재정준칙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에서 관리하고, 국가채무비율은 60%를 상한으로 하는 것처럼 우리도 준칙을 만들어 관리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럼에도 ‘유연한 재정준칙’이라는 용어 자체에서부터 모순으로 해석된다. 준칙은 일종의 규칙인데, 이를 유연하게 만들고 제대로 지키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지난 2016년 발의한 재정건전화법(채무비율 45%·재정적자 -3%)은 한국적 상황에 맞지 않는다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건전화법 취지는 좋지만 숫자는 맞지 않다고 봐 거기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며 “채무준칙, 수지준칙, 수입과 지출 통제 등 여러 방법을 놓고 어떻게 정할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암묵적으로 여겨왔던 재정관리 목표조차 그때그때 고무줄처럼 늘려왔던 정부여서 과거 금과옥조로 여기던 재정건전성 사수보다는 등 떠밀린 모양새라는 시각이 강하다.

재정준칙 검토를 시작하겠다는 시점도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운다. 정부는 재정준칙 도입을 내년 3·4분기부터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 선거가 오는 2022년 치러지는 만큼 사실상 차기 정부에서 재정준칙을 적용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익명의 한 재정 전문가는 “지금 정부는 펑펑 쓰고 조이는 건 다음 정부가 하라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정부는 재정준칙을 거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내년도 예산 증가율은 9.3%이지만, 이후로는 증가율이 크게 떨어진다”고 강조한다. 지출 관리를 하고 있다는 취지에서다. 실제 정부가 국회에 내년도 슈퍼예산안과 함께 제출한 2019~2023년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보면 2021년 총지출 증가율은 6.5%로 뚝 떨어진다. 이후 2022년과 2023년에도 각각 5.2%와 5.0%로 관리하겠다고 나온다. 하지만 총지출 규모 자체가 급격히 불어난 탓에 증가율을 낮게 가져가더라도 불어나는 지출 규모 자체는 제어가 쉽지 않다. 예컨대 2021년, 2022년, 2023년으로 갈수록 증가율은 6.5%, 5.2%, 5.0%로 하락하지만 지출 증가액은 33조3,000억원, 28조5,000억원, 28조7,000억원으로 크게 차이가 없다. 현금성 복지 확대로 인해 한 번 늘리면 다시 줄이기 어려운 의무지출 비중이 50%를 넘어서면서 예산 자체가 경직된 채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까닭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 스스로 밝힌 재정운용계획을 실질적으로 지킬 수 있도록 책임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준칙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한재영·황정원기자 jyhan@sedaily.com

황정원·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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