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하루 앞둔 18일 근로기준법 개정이 연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시행규칙을 변경해 ‘주52시간 근로제도’ 위반 시 처벌을 유예하고 특별연장근로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를 둘러싼 여야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먼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 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고육책”이라며 정부를 두둔했다. 이에 대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소속 김학용 환경노동위원장은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정부가 행정조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부와 여당이 입법에 훼방을 놓고 있다”고 응수했다.
가뜩이나 여야의 탄력근로 확대 논의가 1년 넘게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일방적인 보완책 발표로 협상은 더욱 난항을 겪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당의 탄력근로 단위기간, 선택근로 정산기간 동시 확대 요구에 민주당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동의 조건을 내걸면서 그렇지 않아도 꼬인 실타래에 고용부의 행정조치 예고까지 맞물리면서 정치권에서는 연내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날 정부가 행정조치를 예고한 직후 김 위원장은 입장문을 통해 “여야의 협상이 한창인 국회에 정부가 최후통첩을 날렸다”면서 “정기국회 회기가 20일이나 남은 시점에 뜬금없이 행정조치 예고로 주52시간 근로제를 보완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은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에 제동을 건 것이나 다름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주52시간 근로제 위반 시 처벌 유예나 특별연장근로 요건 완화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여야가 신경전을 멈추고 지난 7월 파행된 후 한차례도 하지 않은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를 다시 한다고 해도 협상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당 소속 환노위의 한 의원은 “최악으로 치달았던 조선산업 경기가 이제 겨우 반등해 일감이 늘어나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는 제발 일 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며 “선박 인도 시한을 지키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탄력근로와 선택근로 확대가 꼭 필요한데 여당이 노조의 눈치를 본다고 기간 연장을 안 해주고 있다”며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이다. 주52시간 근로제를 준수하되 업종별로 상황에 맞게 하자는 건데 이걸 왜 안 된다고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선택근로 확대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한국당은 탄력근로 확대를 넘어 추가적인 유연근로(선택근로) 확대 안도 수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노동시간 단축의 근본 취지까지 완전히 붕괴하고자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다만 협상의 여지는 열어놓은 상태다. 앞서 한정애 민주당 환노위 간사는 14일 한국당이 ILO 비준 동의를 수용할 경우 선택근로 확대도 논의해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입장을 굽히지 않는 한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결사자유 보장’ ‘강제노동 금지’ 등 ILO 비준에 동의한다손 치더라도 재계가 원하는 ‘대체근로 전면 허용’ ‘사업장 점거금지’를 조건으로 내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민주당이 노동계가 반대하는 대체근로 전면 허용 등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 관문을 넘는다 해도 탄력근로·선택근로 단위·정산기간과 관련해 여야의 셈법이 다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