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이들이 ‘짬짜미 선거법 합의’를 시도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군소정당들 사이에서 나온다. 미 의회의 지지를 얻기 위한 방문이라는 게 명목상의 이유지만 선거법 본회의 상정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이들끼리 합의된 안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군소정당 일각에서는 자유한국당과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이 선거제 개편을 강경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여당마저 내부 반발에 직면하며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원안보다 비례대표 확대 폭이 크게 후퇴한 안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나경원 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0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상에 대한 한국 의회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한 의원외교에 나섰다. 2박4일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으로 떠나기 전 인천공항에서 이 원내대표는 “의원외교 차원에서 떠나는데 정치 현안과 관련해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응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번 미국 방문이 겉으로는 ‘의회외교’로 포장됐지만 진짜 목적은 내밀하게 선거제·검찰개혁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려는 데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한 원내대표는 “의장실에서 만나면 속기사와 당직자들도 있어 마음 편하게 당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공개 회동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군소정당들은 3당 간의 합의가 기존 패스트트랙 안에서 후퇴한 결과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 지도부는 “패스트트랙 지정 공조를 부활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지만 의원들의 속내는 다르다. 한 경기 지역 재선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자기 선거구가 뺏기면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서울 지역 초선 의원 역시 “선거개혁 확신범은 없다. 처음부터 공론화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패스트트랙 안에 따라 선거구가 재편되면 선거구 28곳이 직접적으로, 5~60곳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 당내에서는 ‘240/60’ ‘250/50’ 등의 안이 거론되고 있다.
바른미래당 핵심관계자는 “공식 일정도 몇 개 안 되는데 당연히 선거제에 대한 얘기를 할 것”이라며 “2019년 예산안 합의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12월 한국당이 예산안 논의를 거부하다가 막판에 민주당과 단독 합의에 이르며 정의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3당을 ‘패싱’한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는 얘기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정치개혁을 위해 지역구 축소를 가정하고 진행한 것이 선거제 개혁 아닌가. 이제 와서 마음이 변한다”며 “자기 기득권을 버리지 않고 무슨 선거개혁을 하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