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0시 종료를 앞두고 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양국 정부 간 막판 물밑교섭에 힘입어 극적으로 연장됐다. 우리는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되 일본은 수출규제 해제를 위한 대화를 시작하며 서로 시간을 버는 모양새다. ★관련기사 2·3면
하지만 이날 양국 정부의 발표에는 그간의 갈등의 앙금이 남아 있었다.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를 언제든 다시 종료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고 일본 역시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미국의 거센 압박에 못 이긴 한일갈등 ‘임시 봉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한일 지소미아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2019년 8월23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했으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이해를 표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일 간 수출관리 정책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본의 3개 품목 수출제한에 대한 WTO 제소 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이에 대해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조치에 당장 변화는 없지만 수출관리와 관련한 국장급 대화를 열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수출 관리와 관련해 자국이 우려하는 사항을 한국이 개선하려는 의욕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규제 완화 가능성을 열어놨다. 하지만 기존 조치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 명확히 답하지 않았고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문제는 별개라는 입장도 유지했다.
지소미아 종료 직전까지도 팽팽하게 부딪히던 한일 양국은 막판 물밑교섭 끝에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청와대 안보실을 비롯해 외교·국방·산업통상자원부가 동시다발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카운터파트와 접촉했다. 일본을 방문 중인 데이비드 스틸웰 미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한일 양국의 입장을 일본 현지에서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막판 중재 노력이 한일 갈등 봉합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수출규제 기조를 유지한 상황이지만 한일 양국이 한발씩 물러나는 모습을 취함에 따라 양국 정부는 최종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집중 협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연내에 직접 만나 담판을 지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당장 다음 달 하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이 별도의 회담을 가질 공산이 크다. 일각에서는 그 이전에 한국 또는 일본에서 회담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일본산 불화수소를 대만산으로 대체한 극일 기업을 찾아 ‘경제 자강론’을 강조했다.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를 계기로 시작된 소재·부품·장비 부문의 ‘탈(脫)일본’을 일관되게 추진해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지소미아 종료 문제를 두고 한국과 일본이 치열한 협의를 벌이는 상황을 의식한 듯 연설문에서 ‘일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윤홍우·양지윤기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