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日 "韓 주장 굽힌 좋은 전례"…수출·강제징용 문제 강경대응 전망

[포스트 지소미아 첩첩산중]

■'외교전 승리' 자평한 日

日언론 "협의 재개 응하겠지만

일절 타협 않을 것" 강조하기도

NHK "韓반박, 내부비판 방어용"

모테기 외무, 강경화 장관 만나

"징용 판결, 국제법 위반" 되풀이

일각선 "관계개선 계기 삼아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정지 소식을 1면 헤드라인으로 다룬 23일자 일본 주요 조간신문들.  /도쿄=연합뉴스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정지 소식을 1면 헤드라인으로 다룬 23일자 일본 주요 조간신문들. /도쿄=연합뉴스



“한일 관계에서 한국이 굽힌 것은 거의 없어서 (지소미아 종료 정지는) 좋은 전례가 될 것입니다.”(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정지를 놓고 양국 간 현안이 있을 때마다 일본의 양보로 관계가 유지되던 한일 관계를 ‘리셋(초기화)’했다는 평가가 일본에서 나오고 있다. 국익에 관한 한 매체 성향과 관계없이 자국 정부를 옹호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일본 언론이 이번 사안에 있어서는 유독 ‘한국의 양보, 일본의 승리’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일본 정가 및 언론이 지소미아 종료 정지가 아베 신조 총리의 ‘외교적 승리’라고 일제히 치켜세우면서 일본이 향후 수출규제나 강제징용 문제 등을 놓고도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4일 요미우리신문은 혐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의 발언을 인용해 아베 정부의 외교 성과를 강조했다. 무토 전 대사는 신문에 “문재인 정권이 지소미아 종료를 피한 것은 일본의 의연한 태도 앞에 종래의 주장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일본의) 강경한 대(對)한국 정책이 효과를 봤다. 한일 관계에서 한국이 (주장을) 굽힌 것은 거의 없어서 ‘좋은’ 전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도 지소미아 종료를 코앞에 두고도 기존의 강경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고 자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소미아 연기 결정 직후 측근들에게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면서 “미국이 상당히 강해서 한국이 포기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아베 총리가 지소미아 종료 7시간 전인 지난 22일 오후5시에 한국이 협정 종료 통고의 효력을 정지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제대로 된 판단”이라고 담담히 말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친(親)아베 정부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23일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려 “거의 일본의 ‘퍼펙트게임’”이라고 평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수출관리를 둘러싼 당국 간 협의 재개에는 응하지만 일절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일본 현지에서 이번 지소미아 연장을 놓고 자국의 ‘판정승’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이번 결정이 미일동맹을 기반으로 일본과 미국이 손잡고 한국을 압박해 이끌어낸 성과라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아사히신문은 미국 상원이 지소미아 연장 촉구 결의안을 채택한 데는 일본 측의 물밑작업이 한몫했다고 전했다. 총리 관저의 한 관계자는 신문에 “워싱턴의 파괴력은 엄청나다. (한국 측을) 옥죄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주한미군 일부 감축까지 거론하며 한국의 지소미아 유지를 압박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해 이 같은 내용의 백악관 관계자와의 면담 결과를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또 21일 늦은 밤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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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외교적 승리’를 거뒀다는 일본 측 평가를 반박한 데 대해서도 NHK는 “이번 (지소미아 종료 정지) 합의를 둘러싸고 한국 내에서 문재인 정권 지지층을 포함해 ‘일본 측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면서 “이 같은 비판에 대한 방어 목적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같은 일본의 반응을 볼 때 아베 총리는 수출규제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후속조치를 놓고 강경 대응을 고수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전날 강경화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기존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기자들에게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 이후 압류된 일본 기업의 자산이 현금화된다면 한일 관계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한국에 국제법 위반 상황의 시정을 요구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다만 현지 일각에서는 아베 정부가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은 23일자 조간에 게재한 ‘관계개선의 계기로 삼자’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일본 정부가 7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한 것은 징용공(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보복임에 틀림이 없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에스컬레이터를 멈췄으니 일본 정부도 이성적인 사고로 돌아가 수출규제에 대한 협의에 진지하게 임하고 수출규제를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전날 NHK는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이 강제징용 문제 해법으로 제안한 이른바 ‘1+1+α(알파)’ 방안이 일본 내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NHK는 “지소미아 종료 연기 결정 후 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일 양국 사이에 이견 좁히기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 정부가 문 의장이 제시한 안의 향방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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