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과 고군분투는 40여명의 경제학자들이 내년 한국 경제를 전망하며 뽑아 올린 키워드이다. 올해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고 내년은 더 악화돼 장기불황에 빠져들지 모른다는 일각의 위협적인 전망과는 달리 수치만 보면 이들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올해 2%, 내년 2.3%라는 전망치만 보면 그렇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임을 금방 알게 된다. 국제경제 환경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한 상태에서 우리 경제는 투자와 수출 부진으로 정부 재정을 양껏 쏟아부어야 2% 턱걸이 성장이라도 유지할 수 있고 내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과도한 부채를 줄여야 하는 가계나 불안정한 일거리라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근로자, 수익률 하락에 좌불안석인 기업 등 모두가 분투 중이다. 정부도 몸이 달아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추경까지 편성해가며 당초 내세웠던 2.6~2.7%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결국은 연말 막판 스퍼트에 성공해야 2%라도 가능할 듯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올해 민간과 정부의 성장률 기여도 비중이 3대7 정도다. 건강한 경제라면 그 비중이 거꾸로 돼야 정상이다. 내년에도 올해의 반복에 불과하리라는 점에서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게다가 내년 2.3% 성장률 전망에는 올해 민간투자가 바닥까지 떨어졌던 기저효과가 반영돼 있다. 믿을 구석이라고는 9.3% 증액되는 정부 재정뿐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지난주 올 3·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만 보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과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포용적 성장을 위한 정부정책 노력을 일관되게 지속해나가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안이해 보인다. 가계동향조사로 확인되는 사실은 악화하던 분배지표가 3·4분기에 처음으로 조금 개선됐다는 점뿐이다. 연간도 아니고 분기별 통계만 보고 분배가 개선됐다며 반색하는 모습도 그렇지만 이를 근거로 소득주도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진영 간 코드가 돼버린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하고 완전히 새 출발하라는 비판도 비현실적이지만 비판자들이 ‘소주성’의 진가를 몰라봤다는 듯 조그마한 성과라도 내세우려는 정부의 태도도 보기 민망하다.
지금 우리 경제는 과거 상상도 못 했던 불확실한 국제환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은 일시적 봉합에도 점차 전면적인 패권경쟁으로 비화하고 있으며 그동안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평가받던 한중일의 동북아 공급망은 정치외교에서 촉발된 갈등으로 상대에게 치명타를 먹일 수 있는 무기로 쓰이게 됐다. 온 유럽이 떨고 있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Brexit)의 불안은 아직 정책 어젠다에 오르지도 못했다. 경제가 정치적 리스크에 발목 잡혀 활력을 잃어가는 상황은 국내도 마찬가지다. 타협을 모르는 사생결단의 정치는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소모적인 기 싸움에만 열을 올릴 뿐이다. 데이터3법이나 소프트웨어진흥법의 전부개정, 탄력근로 개편 등 시장에 조금이나마 숨통을 열어줄 제도개혁은 1년 가까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대 성장과 최고의 고용률, 3만달러 소득 국가라는 정부의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팽배한 불안과 장기침체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런 시장 심리의 근거를 굳이 따져보자면 첫째는 너무 빠른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하락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당국이 이를 반전시키기 위한 산업구조개혁이나 제도개혁에 손을 안 대고 이럭저럭 버티기만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경제 수준에서는 3% 초반의 성장은 가능하지만 2% 안팎의 성장에 목을 맬 뿐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릴 개혁의 고통은 피하려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미래가 불안하지 않은 경제주체가 어디 있겠는가.
기업이 활력을 잃어 가는데 재정으로 버티는 고군분투의 경제가 언제까지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나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