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학교 3학년이 대학 입시를 치르는 오는 2023학년도부터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 전형 비중이 40% 이상으로 확대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확대를 공언한 뒤 약 40여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대입 의혹이 불거진 지 약 100일 만의 일이다. 하지만 대입 불공정 논란의 중심인 서울 주요 대학의 높은 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은 이후에도 크게 축소되지 않고 유지될 것으로 전망돼 총선 민심을 겨냥한 ‘침소봉대’형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기사 31면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교육부는 학종과 논술 위주 전형의 비중 합계가 45% 이상인 서울 소재 대학에서 수능 위주 전형의 비중 상향을 권고하기로 했다. 대상 대학은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숙명여대·광운대·건국대·동국대·숭실대·서울여대 등 16곳이다.
이들 대학의 수능 위주 전형 선발 비율은 평균 29%로 정시 비중을 40%로 확대할 경우 선발 인원은 지금보다 총 5,625명 늘어날 수 있다. 교육부는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 대학 지원사업 등 재정 사업과 연계해 대학들의 권고안 준수를 유도하는 한편 대학별 여건을 감안해 2022학년도 조기달성도 유도하기로 했다.
아울러 교육부는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에서 대입 전형자료가 공정하게 기록될 수 있도록 2024학년도 대입부터 학생부 비교과영역을 전면 폐지하고 자기소개서도 입시에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농어촌학생·장애인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의 선발 비율을 10%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사회통합전형(가칭)’도 도입한다.
유 부총리는 “이번 대입전형구조 개편안은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을 보완한 것으로 고교학점제에 부합하는 2028학년도 미래형 대입제도가 마련되기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해 교육현장이 안정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원·이경운기자 heewk@sedaily.com
논술 없애 정시 늘리고 학종은 소폭 축소...“총선용 생색내기”
[大入 공정성 강화 방안]
서울 14개 대학 논술 비중 12%선
폐지만으로 수능 40% 무난히 충족
비교과 폐지에 사회통합전형 확대
교실 문제풀이 교육 기승 가능성
대학, 교과비중 확대·면접 강화할듯
28일 교육부가 내놓은 대입제도 공정성 개선 방안은 불공정 논란이 일었던 학생부종합전형의 개선을 위해 서울 16개 대학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 전형의 비율을 40%로 상향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대부분 대학에서는 학종 비중을 줄이는 대신 논술 전형을 폐지해 수능 비율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개편안 자체가 총선 민심을 겨냥한 ‘숫자 부풀리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0월 한 달 동안 13개 대학에서 학종에 대한 집중 실태조사를 진행했지만 학종의 불공정성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고, 계속되는 사회적 불신에 대입 전형구조 개편안까지 내놓았지만 서울 주요 대학의 과도한 학종 비중 축소 여부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셈이다.
◇학종, 서울권 최대 전형으로 유지될 듯= 2023학년도부터 수능 위주 전형이 확대되는 대학은 학종과 논술 전형을 합한 모집비율이 45% 이상 학교 중 서울 내에 소재한 16개 대학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대학은 수능 확대를 위해 학종 비중을 줄일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태다. 폐지 유도가 확정된 논술 전형 비중(서울대·고려대 제외한 14개 대학 평균 12%)을 수능 전형으로 돌리기만 해도 수능 위주 전형 40% 이상을 무난히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경희대(38.1%), 서울시립대(37.9%), 숙명여대(38.1%) 등은 두 전형의 비중이 40%를 소폭 밑돌고 있다. 특히 서울대와 고려대는 논술 전형이 없고 수능 전형 비중도 21.9%, 18.4%에 불과해 학종 비중은 크게 낮추는 대신 수능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16개 대학의 전체 학종 비중이 크게 축소될 여지는 적은 상황이다. 실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학종의 개선 과제들이 안착되기까지 수능 위주 전형을 확대하겠다”면서도 “논술 위주 전형과 특기자 전형을 수능 위주 전형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교육부가 2022학년도부터 수능 비중을 30% 이상으로 권고하는 ‘수능 30%룰’을 선제적으로 적용해 이미 2021학년도 기준 10개 대학의 수능 비율이 30% 이상으로 늘어난 상태라 서울대·고려대 등을 제외할 때 비교적 무난한 전환이 예상된다. 한국외국어대의 경우 수능 비중을 1.3%포인트만 올려도 조건을 충족한다.
논술 전형은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 등에서 특기자 전형과 마찬가지로 폐지 축소가 이미 예고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번 방안이 학종을 축소하라는 국민들의 여론을 수능 확대로 무마한 ‘생색내기’이자 ‘과대 포장’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학년도 학종의 선발비율은 전국 평균 24.9%에 그친다. 반면 서울권은 38.9%에 달하고 서울대 등 국내 5개 상위권대에서는 최하가 50%에 육박한다. 이대로라면 수능 비중이 늘어난다 해도 16개 대학 중 10개 대학에서는 여전히 학종이 최대전형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학종 비교과 폐지·지역균형 강화…내신 비중 확대되나=교육부는 부모배경 등 외부 요인을 대입에서 차단하기 위해 2024학년도 입시부터 비교과 영역 및 자기소개서의 대입 반영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경우 학종의 핵심인 각종 비교과 평가와 전공 적합성 특기활동 등이 대입에 반영되지 못해 사실상 내신 성적으로 선발하는 교과전형에 가까운 학종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학내 수상경력, 자율동아리 활동 등이 사라질 경우 내신 교과 평가에 더 치중하게 되고 주요 대학의 수능 비중마저 늘어나 교실 분위기는 더욱 입시 문제풀이 위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농어촌학생·장애인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모집정원 대비 10% 이상 선발하는 사회통합전형(가칭)의 법제화를 추진하면서 수도권 대학의 경우 학교장 추천 형태의 ‘지역균형 선발’ 전형을 10% 이상 두되 학생부 교과전형 위주로 권고하기로 했다. 수도권 대학 대부분에 지역 고교 할당 형태의 지역 균형이 자리 잡게 되면 전국 고교에서 교과 전형 위주의 입시 풍토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입시 전문가들이 이번 방안에서 지적하는 변수는 면접을 넘어 서류에서까지 출신 고교 이름을 가리게 한 ‘고교 정보 블라인드 제도’다. 만일 고교 유형까지 가리도록 확대 실시될 경우 대학들이 학종 비중을 자발적으로 낮추고 교과 전형 및 수능 최저학력 기준 등을 강화하는 형태로 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면접도 다른 주요 변수다. 학종에서 그나마 객관적 자료인 각종 비교과 영역이 사라지고 정성평가의 개입 여지가 더 높은 면접은 남게 돼 운영에 따라 당락을 가늠하는 주요 요소로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다른 난도와 절대평가 기조로 수능 변별력에 회의적인 대학들이 수능 위주 전형을 확대하면서 수능 반영 비율을 낮추고 구술·면접·교과 등의 반영 비율을 높일 수도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학종 불공정성에서 출발한 제도 개선안이 총선용 생색내기로 구색만 맞춰 마무리되는 느낌”이라며 “그러나 주요 대학이 대상인 만큼 정책 파급 효과는 클 수밖에 없어 교육현장이 조변석개로 뒤집힌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