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나이 듦이 두렵지 않은 삶을 꿈꾼다면

헤르만 헤세, 학창시절 두번 퇴학 등

불우한 유년시절에도 당당함 빛나

나은 삶 꿈꾸는 시간엔 '늦음' 없어

불안해하기보다 희망 찾아나가야

정여울 작가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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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마음 자세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만의 꿈을 향해 조금씩 다가갈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그것이 ‘외로울 용기’와 ‘가난할 용기’라고 생각했다. 타인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외로움, 그리고 남다른 꿈을 오직 내 힘으로 실현하기까지 필연적으로 견뎌야 할 가난. 그 두 가지는 인간이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외로움과 가난조차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견뎌내는 노하우가 생기면, 꿈을 이루는 힘겨운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쓰라린 고통조차도 삶의 자양분이 되고 글쓰기의 재료가 되어주는 축복을 나는 경험했다. 그런데 내가 이제 외로울 용기와 가난할 용기를 간신히 갖추었다 싶을 때, 또 다른 위기가 닥쳐 왔다. 바로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어떻게 하면 나이 들면서도 ‘혹시 나의 꿈을 이루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이듦의 공포를 이겨내고 나의 존엄과 나만의 세계를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을까. 흐르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결코 나다움을 잃지 않는 용기를 어떻게 길러야 할까. 나는 이런 용기를 헤르만 헤세로부터 배웠다. 그는 기댈 수 있는 학벌도 이렇다 할 지연도 없었다. 힘들 때 의지할 만한 그 어떤 성공한 사람도 주변에 없었지만, 그 대신 헤세는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었다. 헤세는 학창시절 두 번이나 퇴학을 당했고, 따돌림도 당했으며,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버려지기도 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무릎 꿇지 않는다. 그는 선배든 스승이든 부모든 그 누구 앞에서도 자기답지 않은 모습을 꾸며내어 잘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당당함이 참으로 좋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나다움을 지키겠다는 믿음, 인정투쟁이나 대중적 인기를 위해 자신을 호사스럽게 꾸며대지 않는 순수함이 그를 지켜준 자기 안의 에너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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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헤세는 나이 들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갔다. 사실 젊었을 때의 헤세는 좋은 남편도 좋은 아버지도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글쓰기와 여행을 가족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이기적인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나이 들수록 헤세는 따스한 아버지, 좋은 남자가 되어갔다. 첫 번째 부인 마리아와는 고통스러운 이혼의 과정을 겪었지만, 노년기에는 두 사람이 세상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러운 친구가 되었다. 헤세는 심각한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겪었지만 융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정신적 문제를 극복했으며, 그 치유의 과정을 ‘데미안’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들 속에 반영함으로써 치유와 극복의 에너지를 전세계 독자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는 나이들수록 영감이 고갈되어가는 작가가 아니었으며, 그 흔한 매너리즘에 빠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더욱 활활 타오르는 영감을 주체하지 못해 평생 아이디어가 떨어지지 않았으며, 마지막까지도 좋은 작품을 구상하고 출간했다. 노년기에 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나이들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축복이야말로 내가 꿈꾸는 노년의 이상적 밑그림이다.

때로는 삶이 우리에게 너무도 가혹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지고, 나이 듦이 무작정 두려워지는 순간이 많지만, 나는 헤세로부터 흐르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운다. 그것은 바로 문학과 예술과 자연을 항상 물처럼 공기처럼 내 곁에 두는 진지하고도 풍요로운 삶이다. 문득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조바심에 빠질 때마다, 나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찾는다. 나는 헤세의 글과 삶과 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시간에는 결코 ‘늦음’이란 없음을 배운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통해 모든 인연을 첫사랑처럼, 첫 만남처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고, ‘데미안’을 통해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신비와 새로움을 잃지 않는 문학작품의 마법을 배운다. 마주치는 모든 존재들 속에서 사랑과 희망의 조짐을 보는 것, 그것이 내게는 나이듦에도 굴복하지 않는 생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상 속의 마음챙김 비법이다. 헤세를 통해 나는 점점 ‘나다운 존재’가 되어간다. 헤세를 통해 나는 단지 더 좋은 작가가 아니라 더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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