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올들어 네번째 하향...이주열 "성장 모멘텀 강하지 않다"

■한은 올 성장률 2.0%로 내려

내년 성장률 2.3% 전망했지만

잠재성장률 2.5~2.6% 밑돌아

무역분쟁 악화·반도체 부진땐

경기회복 가능성 점점 멀어져

물가상승률도 1%대 머물수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11월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2.0%로 다시 낮췄다.  /권욱기자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11월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2.0%로 다시 낮췄다. /권욱기자



한국은행이 올해 네 차례나 성장률 전망을 하향 수정한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의 여건이 취약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청와대 참모와 부처 장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기가 반등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현실은 영 딴판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금을 풀어 소득을 부양하는 소득주도 성장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통화정책 여력이 더 있다고 언급한 것은 성장률이 내년에도 예상대로 반등하지 못할 경우 추가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이 29일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로 올해보다는 소폭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잠재성장률(2.5~2.6%)에 미달하면서 이 총재조차 “성장 모멘텀이 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한 설비투자와 수출이 내년에는 증가세로 반전하면서 성장세가 회복될 것으로 봤지만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예상대로 완화하고, 반도체 경기가 회복세를 탈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한은의 기대와 달리 기업투자나 소비가 내년에도 부진할 경우 기준금리 인하가 한 차례 이상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기준금리 한 차례 이상 인하 가능성



한은은 이날 내년도 경제 전망에서 성장률을 2.3%로 예상해 지난 7월(2.5%)보다 0.2%포인트 내렸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7월에 2.2%로 예상했다 2.0%로 낮춘 것과 같은 인하 폭이다. 우선 내년 민간소비가 소비심리 개선 및 정부의 지출 확대 등에 힘입어 완만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내년 민간소비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7월 2.4%에서 2.1%로 떨어졌지만 올해(1.9%)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성장률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설비투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투자가 늘면서 올해 7.8% 감소에서 내년에는 4.9% 증가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됐다. 올해 설비투자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가 반영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건설투자는 주거용 건물을 중심으로 감소세를 이어가 내년에도 -2.3%로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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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기 부진의 또 다른 요인인 수출은 세계 교역량 증가폭이 확대되면서 증가세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반등 기대치는 기존보다 낮췄다. 한은은 상품 수출 성장률을 올해 -0.4%, 내년 2.2%로 각각 전망했다. 이 총재는 내년 경제 전망과 관련해 “내년에 수출과 설비투자가 완만히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 경제의 성장 모멘텀이 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앞서 한은은 2019∼2020년 잠재성장률을 2.5∼2.6%로 추정한 바 있다.



미중 무역분쟁 격화 땐 성장률 더 떨어질 수도



정부가 내년에도 513조원에 달하는 슈퍼 예산으로 확장적 재정 운용을 지속하는 데 더해 한은이 설비투자와 소비증가를 점치며 성장률 개선을 예상했지만 불확실성은 높은 상황이다. 한은은 내년 경제 성장을 전망하면서 미중 무역분쟁이 더는 악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달고 주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 경기가 내년 중반에 회복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는 외부의 예측을 반영했다.

만일 미중 무역분쟁이 악화하거나 반도체 가격 반등이 예상을 빗나갈 경우 설비투자를 중심으로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고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한은은 내년 경기 흐름을 어둡게 할 리스크로 △반도체 경기 회복 지연 △글로벌 교역 부진 지속 △홍콩 시위 사태 격화 등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중국의 내수 부진 심화 등을 꼽고 있다.

여기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전망치인 0.4%보다는 높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에도 목표치인 2%에 크게 미달해 1%에 머물 것으로 보이는 것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 달성을 녹록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다. 실제 한은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국내외 주요 기관들의 예상치와 비교해봐도 상단에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을 2.3%로 예측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은 2.2%로 전망하고 있다. 또 골드만삭스와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 등은 2.1%로 예상하고 있으며, 한국경제연구원(1.9%)과 LG경제연구원(1.8%) 등은 1%대 성장을 예상했다.

박석길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대내외 경제 여건이 나빠져 내년에도 저성장과 저물가가 나타날 경우 한은이 금리를 한 번 정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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