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 사전 유출이라는 황당한 사태는 대입의 신뢰도 추락을 부채질할 것으로 우려된다. 점수를 미리 확인한 수험생들은 전략적으로 수시전형에 불참하는 등 대학 입학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사전유출이 공식 발표보다 이틀 정도 앞서 발생했고 점수를 확인한 학생이 300여명에 불과해 대형 사고로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가뜩이나 잦은 대입제도 개편으로 학부모들의 혼란을 초래하더니 이번에도 보안 시스템마저 구멍이 뚫리면서 비판 여론이 들끓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와 시험을 주관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해킹이 아니라면서도 성적을 확인한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업무방해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2일 평가원 조사 결과 수능 점수를 먼저 확인한 수험생은 총 312명이다. 사전 점수 확인은 재수생만 가능했기 때문에 현역 고3 학생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해당 수험생들은 1일 오후9시56분부터 2일 오전1시32분까지 평가원 홈페이지 수능 성적증명서 발급 서비스에서 본인인증 후 소스코드에 접속해 2020학년도 성적을 사전조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평가원은 “타인의 성적은 볼 수 없는 구조이므로 본인 사항만 본 것으로 확인됐다”며 “성적 조회 시 시작 일자가 설정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성적 유출 논란의 공정성을 가릴 핵심은 점수 확인 시점이다. 현행 수능은 수시에 합격할 경우 정시를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수능 점수 사전확인자가 이를 정시에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수시 대학별 고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논란이 확산될 수 있다. 다만 평가원 확인 결과 사전 점수 확인자의 최초 로그인 시간이 1일 오후9시 이후였기 때문에 이와 같이 활용됐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평가팀장은 “점수 확인이 지난주 말에 있었던 대학별 고사 전이었다면 논란이 컸을 텐데 일단은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수능 점수 유출 파장과 별개로 교육부와 평가원의 시험 관리 소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송근현 교육부 대입정책과정은 평가원 해명자료 발표 전 기자회견을 통해 “해킹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면서도 “수능 성적을 미리 확인한 것이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들면 법리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수능 성적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은 지지 않고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 것이다.
송 과장은 평가원 해명 발표 후 “수험생들보다 점수 관리를 소홀히 한 평가원에 더 큰 책임이 있다”며 “교육부가 평가원에 대해 귀책사유를 묻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출의 주범인 평가원은 지난해 감사원으로부터 보안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적도 있기 때문에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유출로 수능 성적을 빨리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점수는 기존 계획대로 4일 오전9시부터 제공된다. /이경운·김희원기자 clou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