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필리버스터’ 문제의 명분을 놓고 다투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지역구 예산을 위한 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밀실합의’의 온상인 소소위를 공개하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없어 정부안은 졸속 심사하고 지역구 예산 나누기에 골몰하는 관행이 또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예산안 정부 원안 통과’를 카드로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현재 본회의에 부의된 513조원 규모의 정부 원안에는 여당 의원들이 원하는 지역구 예산들이 대부분 포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올해 1월부터 각 시도 예산정책협의회 등을 통해 지역구 의원들의 요구를 수렴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예산안도 다른 패스트트랙 법안처럼 필리버스터 철회 없이는 ‘4+1’에서 처리하겠다”고 주장하며 한국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반면 야당은 어떻게든 지역구 사업을 예산안에 넣어야 하는 입장이다. 현재 자유한국당 소속 김재원 예결위원장이 자신의 지역구인 경북 상주·청송·의성·군위 지역에 339억원가량의 사업을 요구했고 경기 동두천시·연천군의 김성원 한국당 의원 역시 1,214억원 규모를 증액 신청했다. 특히 내년 총선에서 얼마나 많은 사업을 따오느냐가 득표와 직결되는 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제1야당을 패싱하면서 예산안을 단독 처리할 경우의 부담이 큰 만큼 이를 고려해 ‘정치적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제1야당을 무시할 경우 정치적 후폭풍은 상당하다. 원안 통과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안은 졸속으로 심사하고 지역구 예산 분배에 집중하는 나쁜 관행이 재현되리라는 걱정도 나온다. 현재 감액 심사대장인 492건 중 120여 개의 사업만 논의된 가운데, 예결위원들이 ‘지역구 예산 배분’에만 골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밀실 합의’의 온상으로 지적돼온 예결위 소소위가 ‘3당 간사 협의체’로 이름을 바꿨지만 비공개로 진행되는 건 같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3당 간사 협의체에서도 논의를 마치지 못한다면 원내대표들이 직접 협상에 나선다. 이 경우 예산안과 선거법·검찰개혁법 등을 함께 묶은 ‘빅딜’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짬짜미 예산’ 관행에 대해 최병호 부산대 교수는 “국회 예산심의권은 행정부를 견제하라고 준 것인데 예산심사를 제대로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런 철저한 정치적 이기주의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 환멸을 느끼게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