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파블로 라라사발(36)은 본의 아니게 최호성의 ‘낚시꾼 스윙’을 따라 해야 했다. 샷 한 뒤 피니시 자세에서 오른쪽 다리를 부자연스럽게 접어 올렸다. 최호성이 거리를 늘리기 위해 개발한 독특한 피니시 자세를 라라사발은 통증을 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했다.
2일(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레오파드크리크GC(파72)에서 끝난 유럽프로골프 투어 2020시즌 개막전 알프레드 던힐 챔피언십. 라라사발은 18번홀(파5)에서 8언더파 우승을 결정짓는 버디 퍼트를 넣은 뒤 한풀이하듯 주먹을 내지르며 포효했다.
그는 발이 너무 아파 정상적인 경기를 할 수 없었다. 마지막 4라운드를 앞두고 오른쪽 발가락에 큰 물집이 심하게 잡혔기 때문이다. 경기 후 트로피에 오른발을 얹어놓고 포즈를 취하는 기념촬영 때 그의 맨발에는 빨간색 밴드가 덮여 있었다. 라라사발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경기에 나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신발을 신는 것도, 카트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것도 힘들었다”며 “‘타이거 우즈는 부러진 다리로 US 오픈(2008년)에서 우승했다’고 되뇌며 포기하지 않고 경기했다”고 말했다.
3타 차 선두로 출발한 라라사발은 전반에만 6타를 잃어 역전패 위기에 몰렸지만 마지막 4개 홀에서 버디 3개를 쓸어담는 뒷심을 발휘했다. 첫 13개 홀에서 더블 보기 1개와 보기 6개로 8타를 잃은 뒤 막판에 버디 5개를 몰아쳤다. 라라사발은 결국 7언더파의 요엘 셰홀름(스웨덴)을 1타 차로 제치고 상금 약 3억8,000만원을 거머쥐었다. 12년 전 프로 데뷔전을 치렀던 대회장에서 2015년 BMW 인터내셔널 이후 4년여 만에 유럽 투어 통산 5승을 달성한 것이다.
세계랭킹 261위였던 라라사발은 집념의 우승으로 156위까지 올라갔다. 지난 1일 일본 투어 카시오 월드오픈에서 우승한 김경태는 544위에서 294계단을 뛰어올라 250위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