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사건 가로채기다.’ ‘검찰에 증거를 도둑맞은 꼴이다.’
지난 2일 검찰이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밑에서 특감반원으로 일했던 검찰 수사관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서초경찰서를 전격 압수수색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터져 나온 경찰 내부 반응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위 첩보와 관련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을 둘러싸고 검경 갈등이 다시 불붙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검경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검찰의 노골적인 견제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커지는 분위기다.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가져와야 할 경찰을 무능한 집단으로 매도함으로써 경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지적이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검찰의 이례적인 경찰서 압수수색에 대해 경찰 관계자들은 모두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서초서 형사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해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돌연 숨진 특감반 출신 검찰 수사관의 휴대폰과 자필 유서 등을 압수해갔다. 경찰은 당혹감과 동시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별다른 타살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을뿐더러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휴대폰을 압수해간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찰 내의 한 수사 전문가는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의 유류품을 검찰이 압수해간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사건 빼앗아가기’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경찰 내의 한 고위간부도 “우리도 사안의 중대성을 잘 알고 신속히 수사할 방침이었는데 검찰이 중간에서 증거품을 가로채 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일선 수사현장에서는 한층 격앙된 분위기가 감지된다.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A 경위는 “검찰이 경찰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면 갑자기 들이닥쳐 수사 중인 증거품을 압수해갈 수 있겠느냐”며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서 압수수색이라는 초강수를 동원하면서까지 굳이 경찰과의 갈등을 유발했어야 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검찰이 경찰 수사가 못 미더웠다면 검경 합동수사 방식을 통해 검사가 수사에 직접 동참하거나 송치 지휘를 통해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는 방법도 택할 수 있다”며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었는데 왜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만들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는 갑작스러운 압수수색을 두고 검찰이 오히려 숨겨야 하는 사실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숨진 검찰 수사관의 휴대폰과 유서 내용에 뭔가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있을 것 같으니 검찰이 급히 숨기려고 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권에서는 검찰이 과도한 압박을 가해 수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이에 사건을 맡은 김종철 서초경찰서장이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함께 근무했던 경험을 연관 지어 압수수색 배경을 추측하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김 서장은 “한마디로 소설이고 황당한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경찰은 검찰이 압수해간 휴대폰의 포렌식 참여를 요청했고 검찰은 이를 받아들였다.
검찰을 향한 경찰의 불만은 사실 오랫동안 누적돼왔다.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이 울산경찰청장 재직 시절 논란이 된 ‘고래고기 환부 사건’이 대표적이다. 울산경찰은 2016년 밍크고래 40마리를 불법포획한 유통업자들을 검거하면서 이들이 보관하던 고래고기 27톤을 모두 압수했지만, 울산지검은 이 중 21톤을 유통업자들에게 돌려주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검경 간 갈등이 불거졌다. 압수수색영장을 둘러싸고 되풀이되는 검경 간 실랑이도 마찬가지다. 임은정 검사가 전현직 검찰 간부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경찰이 두 차례나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모두 기각했다. 최근 10년간 검찰청사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다섯 차례나 신청됐지만 단 한 차례도 허용되지 않았다. 반면 경찰청은 올해 들어서만 아홉 차례나 본청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를 두고 한 경찰 간부는 “검찰이 경찰청사를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김현상·이희조기자 kim01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