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잠재성장력이 떨어지자 정부가 고숙련 외국인 근로자 유인책 강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우수인재 유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언어 문제와 교육시설 확대 등 정주 여건을 개선하지 못하면 취업비자나 출입국 혜택만으로 숙련 노동자를 유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여러 부처에 산재된 외국인 관련 정책을 한데 모아 이민청과 같은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8일 정부 등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지난 2011년 140만명에서 지난해 237만명으로 급증했으나 우수 전문인력 수는 같은 기간 4만8,000명에서 4만7,000명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관광비자 등으로 들어와 눌러앉은 불법체류인구(35만명 이상)까지 합치면 전체 외국인 가운데 우수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낮아진다.
외국인 인력이 고숙련보다는 비숙련에 치우치면서 그간 정부 역시 우수인력에 대한 입국 허들을 꾸준히 낮춰왔다. 실제 법무부는 올 5월에도 외국인 투자기업이 파견받는 외국 전문인력 제한을 완화한 것을 비롯해 기업투자비자 발급 대상 확대, 예비 기술창업자에 대한 학력요건 폐지, 기술창업비자 취득 평가기준 신설 등을 내용으로 하는 우수 기술 외국인 비자 제도 개선 방안을 시행했다. 외국인 투자기업이 파견받는 임원·관리자 수를 투자금 1억원당 1명으로 제한한 기존 규제를 6개월 이상 고용한 국민 3명당 1명, 연간 납세실적 1억원당 1명, 연간 매출액 10억원당 1명 등으로 완화한 것이다. 또 학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로 제한했던 예비 기술창업(D-10-2)비자 취득 대상을 글로벌창업이민센터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해 추천한 인재에 한해 학력요건을 폐지했다. 지난해 1월에는 ‘외국인 숙련기능점수제 비자’ 제도를 본격 도입하기도 했다.
정부가 이렇게 외국인 우수인력 유치에 공을 들이는 것은 고숙련 인재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반감이 적은데다 저출산 시대에 이들이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비자 제도 완화 조치만으로는 외국인 전문인력을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나온다. 설령 유치하더라도 이들이 장기간 머물면서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 언어와 교육 문제 해결은 이들을 한국 사회 일원으로 완전히 정착시키는 데 필수요소로 꼽힌다. 사업장은 물론 관청·도로 등에서 지금보다 영어 등 외국어 상용·병용을 늘리지 않으면 아무리 입국 절차를 간소화해도 우수인력을 끌어모으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외국인들의 거주지를 되도록 집중시켜 자녀들을 위한 전용 학교를 늘리는 등 교육 인프라도 확충할 필요가 있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010년대 들어 대기업들의 영어 상용화가 2000년대보다 더 후퇴하면서 오히려 전문 인력들이 한국을 찾을 요인이 줄었다”며 “경제특구만이라도 영어 상용화를 추진하든가 정부 문서·간판 등에 대한 외국어 병용 강화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 교수는 이어 “외국인 우수 인력들이 일자리를 옮길 때는 단순히 비자나 돈 문제보다도 삶의 질을 많이 고려하는데 미세먼지나 교육과 같은 환경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며 “더욱이 이들을 ‘외국인 노동자’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기업 최고경영자(CEO)까지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일원으로 대우하는 인식 변화도 해결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저출산이 국가적 위기로 직결된 만큼 외국인·이민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로 이민청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각 부처의 이민정책 담당 조직마다 철학과 생각이 다르다 보니 정책 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에서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출산율을 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 인구 문제는 비자 제도 변경과 같은 단편적 정책으로는 절대 해결이 안 된다”며 “대통령 직속 인구청이나 인구국을 설치해 각 부처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다문화 사회를 구축하는 쪽으로 장기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동관 이민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체류 외국인 수가 벌써 250만명을 넘었는데 인력뿐 아니라 예산부터 통합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사회 통합 차원에서 어떤 이민자를, 얼마만큼, 어디로, 왜 데려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어야만 이민 확대에 따른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적 비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