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TSMC가 오는 2022년 3나노(1㎚=10억분의1m) 공정 제품 양산을 선언하며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시장 점유율 1위 수성을 위해 고삐를 바짝 죈다. 반면 전 세계 파운드리시장 점유율 2위인 삼성전자(005930)는 업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공정을 도입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2030년까지 TSMC를 넘어서겠다는 계획이다. 7나노 이하 파운드리의 초미세 공정 주도권 싸움이 TSMC와 삼성전자 2파전으로 압축된 상황에서 양사의 ‘10억분의1m’ 미세화 싸움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JK 왕 TSMC 부사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대만에서 열린 공급망관리포럼에서 “내년 상반기에 5나노 공정으로 제작한 칩을 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며 3나노 공정을 활용한 칩은 2022년께 양산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TSMC가 2024년에는 2나노 공정 기반의 반도체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왕 부사장은 삼성전자가 앞서 도입한 EUV 공정과 관련해서는 “TSMC는 EUV 공정을 통해 반도체 칩을 대량 양산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반도체 회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TSMC는 대만 신주시에 3나노 연구를 위한 센터 건립에 나섰으며 2021년부터 가동에 나선다. 내년 설비투자 규모는 올해와 같은 140억~150억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TSMC는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설비투자액을 100억~110억달러로 제시했지만 3·4분기 실적 발표 때 투자액을 최대 50%가량 늘린 후 공격적 투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TSMC는 올 들어 출하된 ASML의 EUV 노광장비를 싹쓸이하는 등 기술 고도화로 후발 업체와의 격차를 벌린다는 계획이다. ASML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올 3·4분기 매출에서 대만 업체의 기여도는 54%에 달하며 이 중 1대당 1,500억~2,000억원 수준인 EUV 장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TSMC의 이 같은 투자 확대 덕분에 대만의 반도체 장비 투자액은 올 3·4분기 39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4%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반도체 장비 투자액이 22억달러로 전년 대비 36%가량 줄었다는 점에서 TSMC의 공격적 투자가 눈에 띈다는 분석이다. TSMC는 중국 난징에 위치한 12인치 웨이퍼 월 1만장 규모의 16나노 기반 반도체 생산라인을 올해 말까지 1만5,000개 생산이 가능하도록 확대하는 등 중저가 반도체 라인에서도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아직 파운드리시장 점유율 20%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전 세계 파운드리시장 점유율은 2017년 7.3%에서 이듬해 14.9%로 껑충 뛴 후 올 1·4분기에는 19.1%까지 뛰어올랐다. 다만 올 3·4분기 점유율은 18.5%로 연초 대비 하락하는 등 TSMC의 두터운 벽을 실감하고 있다. 퀄컴은 자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중 보급형 모델인 스냅드래곤 765·765G는 삼성전자에 위탁생산을 맡긴 반면 플래그십 모델인 스냅드래곤 865는 TSMC에 물량을 주며 삼성전자가 다시금 쓴맛을 다시게 했다.
이외에도 삼성전자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적신호가 들어온 EUV용 포토레지스트 수급은 지금은 문제가 없지만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종합반도체 기업이자 글로벌 1위 스마트폰 제조사인 삼성전자를 견제하려는 움직임과 강화되고 있는 중국과 대만의 반도체 협업 구조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이에 삼성 측은 미세 공정 향상을 위해 핀펫(FinFET)→GAA(Gate-All-Around)→ MBCFET(Multi Bridge Channel FET)로 이어지는 신기술을 잇따라 공개하며 TSMC를 뛰어넘겠다는 계획이다. 각사의 파운드리 로드맵을 보면 7나노 EUV 공정부터는 삼성전자가 미세하게 앞서는 모습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EUV 도입 시 원가 부담이 커지고 소재 등도 많이 바꿔야 하기 때문에 결국 수율과 가격경쟁력이 중요하다”며 “메모리반도체에서 보여준 삼성 특유의 ‘초격차’ 전략이 파운드리시장에서도 얼마나 잘 발휘될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