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의 급한 불이 꺼졌다. 21개월간 지속되며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주요2개국(G2)의 통상갈등은 1단계 합의 서명과 함께 일단 큰 불길이 잡히면서 봉합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2년 가까이 글로벌 경제를 무겁게 짓눌렀던 미중 무역전쟁이 한고비를 넘기고 최종 타결의 여정에 들어선 만큼 세계 금융시장과 국제사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관련기사 3·4·5·6·18면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이번 미중 1단계 무역합의는 양국이 서로에 부과한 기존 관세를 철회하지 않고 절반으로 줄이는 임시조치에 불과하다. 서명이 이뤄질 1단계 합의안에는 중국이 내년에 최소 5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사들이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이지만 양국이 첨예한 이견을 보였던 기술이전 강제, 지식재산권 보호 조치, 중국 정부의 기업 보조금 등의 의제와 홍콩·신장 위구르 인권 이슈 같은 난제는 그대로 남아 있을 공산이 크다. G2 간의 무역전쟁을 촉발시킨 구조적 갈등 요인이 해소되지 않은 만큼 무역협상이 최종 타결되기까지는 험로가 불가피하고 갈 길이 멀다. 1년반 남짓 이어진 미중 무역전쟁이 이번 1차 합의에도 불구하고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지배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미중 무역전쟁의 파고로 흔들리고 있는 한국 경제는 이번 미중 1단계 합의에도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보고서를 통해 미중 무역협상이 타결되더라도 한국 경제에 작지 않은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수입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협상 타결이 진행될 수 있어 G2를 제외한 한국과 같은 수출 주도 경제 국가는 수출 등의 무역에서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한국은 전자제품·기계·자동차 등 10대 주요 산업에서 발생하는 수출 감소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적인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길은 결국 단기적인 미중 협상 결과에 매달리지 말고 규제 해소와 산업구조 개혁에 채찍질을 가해 경제체질을 신경제구조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뿐이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중 무역분쟁은 근본적으로 세계 패권전쟁의 연장선상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끝나기 힘들다”며 “G2의 갈등 속에서 한국은 우리만의 경쟁력을 길러 장기적인 대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연간 500억달러어치 구매와 환율조작 금지,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를 뼈대로 한 1단계 합의안을 승인했다. 반대로 미국은 1,56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 계획을 철회하고 기존 관세는 50% 낮춰주기로 했다.
합의 발표는 이르면 13일 이뤄질 예정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추이톈카이 미국 주재 중국대사가 1단계 합의에 서명하거나 중국에서 서명식을 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역합의 소식에 글로벌 주식시장은 일제히 상승했다. 이날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가 0.8% 안팎 상승하면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홍콩 항셍지수(2.57%)와 일본 닛케이225지수(2.55%)는 급등세를 보였다. 영국 FTSE100(0.79%)과 독일의 DAX(0.57%)도 상승했다. 국내 증시 역시 급등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54%(32.90포인트) 급등한 2,170.25를 기록하며 6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외국인들은 코스피 현물·선물시장에서 전날 2조1,000억원어치를 산 데 이어 이날도 8,200억원어치를 쓸어담으면서 급등세를 이끌었다. /홍병문국제부장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