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quagmire’라는 단어가 있다.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진창이라는 뜻이다. 일이 꼬일 대로 꼬여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형국을 가리킬 때 쓰인다. 북한 비핵화가 지금 그 꼴이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장담한 소위 북한의 ‘비핵화 결단’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가운데 그사이 북한은 핵무기를 더 늘리고 미사일을 고도화했으며 이제 연말을 시한으로 정해놓고 노골적으로 미국을 협박하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역사의 기록을 위해, 언젠가 새롭게 시작할 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누가 어떻게 잘못해서 이렇게 됐는지 냉정하게 따져놓아야 한다.
지난해 3월 우리 대북특사단은 방북 결과 대국민보고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분명하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언급을 전하며 ‘비핵화 결단’이라고 했다. 대북특사단의 설명을 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초유의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전격 동의했다. 하지만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보장’이라는 전제조건에 대한 북한의 명확한 입장이 무엇인지,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알고 김 위원장을 만나기로 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고 과연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생겨날 때쯤 북한이 답을 내놓았다. 그해 12월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반도 비핵화는…북의 핵억제력을 없애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제거”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북남 영역 안에서뿐만 아니라 조선반도를 겨냥한 주변으로부터의 모든 핵 위협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즉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 이전에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및 핵타격 수단의 한반도전개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며 그 토대가 되는 주한미군철수까지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논리다.
이는 북한이 그동안 해오던 주장과 전혀 다를 것이 없고 비핵화 결단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정부는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신하고 트럼프 대통령까지 설득해 김 위원장을 만나도록 만들었나. 북한과의 관계개선 기대에 들뜬 나머지 착각하거나 왜곡한 것은 아닌가. 우리 정부의 섣부른 판단은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준 것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까지 호도해 성급한 협상에 나서게 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에 몰린 북한을 구해주고 심지어 미국을 겁박하는 위치에 올려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미국의 자책골도 한몫했다. 최근 출간된 책 ‘경고(Warning)’에서 익명의 미 정부 고위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북특사단을 면담하고 즉석에서 북미정상회담에 동의한 것에 대해 백악관이 겉으로는 한반도 긴장완화 가능성을 높이고 비핵화 협상 희망을 만들어내는 흥미진진한 돌파구처럼 묘사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매우 어리석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현직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이라는 큰 떡을 그렇게 쉽게 김 위원장에게 내준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실책임을 한사람 빼고 모두 알았다는 얘기다.
지난 2017년 12월22일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가 채택되면서 북한에 대한 전대미문의 국제제재 체제가 완성됐다. 북한의 모든 외화수입원이 끊기고 에너지 공급은 줄어들게 되며 전 세계가 북한과 외교·경제적 관계를 거의 단절하기에 이르렀다. 만일 우리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결단’ 전도사로 나서지 않았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비핵화 쇼’가 대북제재의 벽을 허물어뜨리지 않았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난 제재 효과가 김 위원장에게 생존과 핵포기 사이에서 진짜 결단을 내리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하는 비핵화 협상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는 2020년 새해 벽두부터 거센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의 상태에 있다.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이했을 때 그 원인과 책임 소재에 대해 모두가 분명히 깨달아야 비로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